또다시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가만히 집에 앉아 맞을 수 없을 것 같아
비오는 일요일
능선 너머 얼음터 계곡으로 갑니다
능선엔 아직도 지난 태풍으로 송두리채 뽑혀 스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고 있는데 이번 녀석은 어떤 녀석일지....
몇번을 미끄러지며 가파른 얼음터 능선을 넘어 내려옵니다
비는 가는 줄기로 쉬임 없이 내리고
계곡은 건널 수 없이 불어 있습니다
작은 계류에서 주전자에 식수를 받아 마련하고는
툇마루에 작은 텐트 하나 펼칩니다
늦은 오후시간
비는 여전히 일정한 양으로 끈임없이 내립니다
가지고 온 야채전꺼리를 꺼내 부쳐 먹으며
비와 나 둘만의 시간을 즐깁니다
간간히 양철 지붕으로 떨어지는 감 소리가
화들짝 꿈에서 깨어나게 합니다
비어 있는 공간들은 모두 계곡물 소리로 꽉 차 있습니다
간혹가다 들리는 천둥소리는
계곡물이 큰 바위를 구르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양철지붕을 때리고
계곡물은
공간을 때립니다
다음날
히끄무레 밝아오는 기운에 눈을 들어봅니다
계곡물은 앞마당을 넘실거리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차분하게도 계속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짙은 구름속에서도 해는 떠서 사방이 밝아 옵니다
산을 쓸어 바다로 내리는가
말갛던 계곡은 흙탕이 되어 구릅니다
온산에 골고루 비가 내리는데
어찌 물은 계곡으로 계곡으로만 모여들어
폭포수처럼 무리지어 쏟아 내리는가
배꼽시계가 점심상을 요구하여
한상 거나하게(?) 차려먹고 물려놓고는
커피까지 한잔 마시고
세상가득한 계곡물 소리에 파묻혀 오수를 즐깁니다
태양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태풍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궁금해 하고 있는데
끈임없이 일정하게 내리던 빗줄기가 가늘어집니다
햇님은 이틀동안 구름속에 갖힌것이 갑갑했었는지
서쪽 하늘에서 구름을 뚫어 보려 하지만
아직은 앞마당에 닿지도 못 합니다
서서히 앞산을 차지하고 있던 짙은 구름이 물러나기 시작하더니
녹색 능선이 운무와 함께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계곡물도 온 산을 다 슬었는지 말갛게 흐르고
나뭇잎에 온몸을 가리고 있던 새들도 먹이를 찾아 창공을 나르고
조그마한 다람쥐 한마리도 숨겨놓은 도토리하나 찾아들고
통통 튀며 앞마당을 가로질러 갑니다
산바도 이틀 동안 줄기차게 비만 뿌리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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