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알프스 산길을 걷다

3. 한량이되어 산길을 걷다 시오미에서 아라카와까지

산순이 2015. 11. 10.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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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몇 분을 곡을 하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하다

바닥에 남은 찌꺼기 까지 모두 긁어 내 버리고 싶지만

일단 좀 달래고 미역국 한 숟가락 더 집어넣는다.

 

   지금 해결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듯하다

 

   지금은 우선은 밥을 먹고 짐을 싸고 텐트를 걷고 걸어가야 한다.

 

   밥을 다 먹고 휴지로 깨끗이 설거지하고는, 텐트 안에 널어놓은 짐들을 다시 차곡차곡 배낭에 집어넣고

텐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텐트는 아직 젖어 있지만 말릴 시간은 없다

젖은 텐트를 잘 접어 주머니 속에 넣어 배낭 바닥에 매달고 햇살이 기다리는 시오미다케로 간다.

 

   하루반나절동안 내린 비로 대기는 모두 씻기었는가 공기가 더없이 맑다

 

 

 

 

   드디어 시오미다케 정상 이다!

비 갠 날은 너무도 청명하여 먼지 하나 없는 듯하다

바로 옆에는 중앙알프스가 선명하게 보이고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 북알프스 바위 봉우리들까지!

보일 수 있는 모든 산들이 총 출동한 듯싶다

북알프스는 역시 악산인가 바위 봉우리들이 즐비한 모습들이 보인다

 

 

 

 

   여기서 시오미고야까지 50분 그리고 또 삼부쿠도케고야 까지 2시간 55

오늘 가야 할 길이다

그래도 오늘은 내리막길이라서 힘들지 않을 것 같아 봉우리에서 젖은 짐들을 말리며 한참을 노닥거리기로 한다.

시오미산 정상은 완전 피난살림이 되었다

텐트와 후라이 은박메트, 우산, 슬리퍼......ㅋ

텐트 말리는 사이 잠시 커피 한잔 끓여 먹으며 시오미 정상을 이리저리 쏘다닌다

   북쪽으로는 아이노와 노트로다케가 산신이 되어 서있고

남쪽에 새로이 육중하게 서있는 산이 아마도 아라카와다케인 듯싶다

저곳을 갈려면 내 계획상으로 3일을 더 자야한다.

   30분 정도 말리니 모두 뽀송뽀송해졌다

피난살림들을 모두 걷어 다시 배낭에 꾸려 넣고 길을 나선다.

이른 시간인데 어디서 나섯는지 대여섯 명의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먼저 보내기 위해 길 한편에 서서보니 20대초반의 대학 산악부인 듯한 팀이다

한 여학생은 얼굴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역하지만...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산에 다니는 것을 보면 기분이 참 좋다

 

   우리나라에 있다면 철사다리를 놓았거나 자일을 걸어 놓았을 듯한,

위태위태한 바윗길을 한 시간여 내려서니 시오미고야가 보인다.

역시 공사를 하고 있는지 기계 소리가 시끄럽다

에구 그그저께 여기가지 왔더라면 고생 좀 했겠어, 그 봉우리서 야영을 하길 정말 잘했네!’

동쪽을 바라보는 능선 꼭대기에 있는 시오미고야는 자리는 끝내준다

만약 다음번에 온다면 한번 자보고 싶은 곳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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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돌아 본 시오미다케는 완전 바위산이다

저 바위봉우리를 내려서 작은 바위 봉우리를 돌아 여기까지 내려오는데도 한시간도 더 걸린다

아마도 천왕봉에서 장터목으로 내려오는 시간보다 조금 길다

다만 천왕봉에는 각종 사다리들이 즐비한데 이곳은 그러한 인공시설물들이 전혀 없어서

까닥 잘 못 하다 간은 천길 아래 로 미끄러져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길들은 그렇게 인공시설물들도 없고 한사람만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다

그러한 좁은 길을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추월 없이 한 줄로 오르고

오르고 내리는 사람이 서로 많이 교차할 때는 대부분 내려오는 사람이 길 한켠에 서서 기다리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웬만큼 올라가면 또 내려오는 사람이 내려오고 또 저쪽에서 너무 많이 기다린다 싶으면 또 기다렸다가 먼져 오르게 하고 - 교통순경이 필요 없는 곳이다

그러니 길이 넓을 필요도 없는 모양이다 길을 만드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모두들 똑같은 마음들이다 

 

  길이 아닌 곳 그러니까 - 물길이 나서 길 같이 생긴 곳 이라든지, 예전엔 길이었으나 위험해서 지금은 안다니는 길들은

그 앞에 조그마한 돌멩이들로 막아 놓고 붉은 페인트로 X 자 표시를 해놓았고

길 쪽으로 역시 길가에 있는 돌멩이에 붉은 페인트로 O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국립공원이라고 하지만 마치 동네아저씨가 길표시를 해 놓은 듯 정겨웁다

 

 

 

   이제 고도가 또 낮아 졌는지 나무들 키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 한다

잔뜩 물을 머금은 숲은 다시 봄으로 되돌아간 듯 보인다.

고도를 더 낮추니 울창한 원시림 속으로 길이 들어간다.

빛도 못 들어오는 울창한 원시림 숲을 한참 걷노라니

이제 또 구름이 몰려오는 시간인지 하얀 구름이 숲을 덮어 숲이 캄캄해진다.

 

 

 

 

 평탄한 숲길을 한 시간여 걸으니 길이 넓어지더니 산장을 안내하는 손바닥만 한 나무판이 나무에 걸려있다

 

 

 

   숲 속에 위치한 산장은 2동의 건물로 제법 크지만 숲의 질서를 흐트러트리지 않는 그야말로 숲 속의 산장이다

2동의 산장건물 앞에 제법 널따란 텐트사이드가 있는데 벌써 큰 텐트가 하나 쳐져 있다

바람이 안 탈 듯한, 산장건물과 가까운 곳에 텐트를 치고 짐을 모두 정리한 다음 산장으로 신고하러 간다.

사람이 뜸한 산장들의 직원들은 인상도 선하고 역시 손님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한다.

야영신고를 하고 또 카레라이스를 주문을 하고 혹시나 밧데리 충전이 되느냐 물었더니

큰 기대도 안 했는데 오케이 한다. 혹시 핸드폰이 켜지나 하고 켜 보았지만 역시 전파는 받지 못한다

핸드폰을 보여주며 안 된다고 하였더니 본인들도 잘 모르겠다고...

핸드폰 켠 김에 오면서 찍은 사진 몇 장을 보여주니 감탄을 한다.

그중에 빨간 열매가 있는 사진을 보더니 오이시”(맛있다) 라고 하네

? 오이시?” 놀래 대꾸를 하니 오이시!”

다음에 보면 먹어 봐야겠다. 무슨 베리라고 알려주는데 외우지는 못 하겠다.

 

 

   그리고 오늘이 금요일 내일부터 다음주 수요일 23일 까지는 연휴여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일러준다.

나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본 오기 전 혹시나 우리나라처럼 추석연휴가 있나 하고 일본달력을 보니

월요일 921일은 경로의날 923일은 추분의 날 그리고 중간에 22일은 센드위치데이 휴일로 되어 있었다 

21일이 월요일이니 19일 토요일부터 5일간이나 연휴이다

그래서 산장들이 923일 까지 운영하는 곳이 많은가 보다 원래는 큰 산장 몇 군데를 제외하고

작은 산장들은 7, 82개월만 영업하는 곳이 많다고 하던데

가지고 온 렌턴을 충전기코드에 연결해서 주니, 받아서 산장 안 콘센트에 꽂아 둔다.

 

   역시 숲 속에 있는 산장이라서 水場이 가까이 있고 수량도 풍부하다

수장에는 나보다 먼져 온 사람이 있어서 좀 기다리고 있으려니

동글동글하니 귀엽게 생긴 30대정도의 총각이 웃으면서 자기는 바디 워시를 한다고 나보고 먼저 떠가란다.

이틀을 물속에 있다 와서 그런가? 몸도 차고 씻을 생각이 없어서 물빽에 물만 받고 야영장으로 간다.

 

   점심 겸 저녁으로 카레라이스를 맛있게 먹고 잠자리에 누웠다

 

   한숨 자고 일어 나니 언제 몰려 왔는지 가스가 산장도 숲도 모두 삼켜버리고도 아무런 감정 없이 배회하고 있다

'아이쿠' 얼른 문 닫아 버린다

 

   깊은 잠 속,  깊은 밤 속

나뭇가지사이로 별이 초롱초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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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소리에 잠이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330

새벽별이 아직도 캄캄한 하늘에 걸려 있건만

이 캄캄한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네.

나도 서서히 일어날 시간

어제 오후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멋진 일몰이 없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으니 6시 정도에 잤을 까?

그러니 9시간을 잔 샘이다

보통 새벽 3,4시에 깨어도 일찍 잠이 드니 평균 8시간 이상은 잠을 자는 것이다

이제 몸은 완전히 남알프스 시계에 적응이 되었나 보다

침낭 안에서 이리저리 뒹굴다 원두커피 향기와 맛으로 남아 있는 잠을 다 떨치고 일어나

렌턴 불빛 아래서 텐트 안에 있는 짐을 꾸린다.

3일 야영한 덕에 식량이 줄어 배낭에 여유가 좀 있으려나?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새 발의 피, 배낭의 공간은 똑 같다

짐을 꾸려놓고 5시에 예약한 아침을 먹고, 산장 안에서 산행정보를 챙긴다.

지금부터는 영업이 종료된 산장들이 만타.

오늘 가야 할 고고우치히난고야도 내일목적지인 다케야마히난고야도, 몇일 후의 하켄보라야노산장도.

더군다나 오늘 목적지인 고고우치히난고야는 물도 없다니 여기서 물을 챙겨 가야 한다

날씨는 연휴동안은 계속 맑고 금요일부터 비가 온 단다.

        

   아침의 맑고 상쾌한 숲 속의 공기는 축복이다

이슬을 머금은 풀밭에서 이슬이 아침햇살에 날아가는 것도 보이고

조금이라도 더 햇살이 비추는 방향으로 몸을 뻗어 작은 햇살 한줄기라도 불평 없이 받아들이는

작은 나무들의 생명의 숨소리도 들리고

나보다 더 오래 살은 나무들의 오래된 기운 속에 담긴 자상한 손길도 느껴지고

퍼드득퍼드득 작은 날갯짓으로 숨바꼭질 하는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리고

높다란 나무 끝에 매달린 햇님의 웃음도 보이고

그 뒤에 큰 사랑으로 모든 것을 지켜주는 아버지 같은 저 푸른 하늘 까지도

그렇게 숲 속의 고요한 아침 속에 서 있는 것은 축복이다

이렇게 아침을 걷는 것은 축복이다

그래서 신 새벽에 몸을 깨워도 이 아침 길의 축복이 있기에

50년 가까이 살아 온 습관을 깨어도

내몸은 아무런 불평이 없다

 

 

 

 

 

 

   아!

  집이다!

산정에 하늘과 맞닿아 있는 그림 같은 집!

멀리 있는 그 집의 모습에 가슴이 울렁인다.

 

   나는 집에 가는 것이다

   피곤한 몸 잠재울 집에 가는 것이다

   힘든 마음 풀어 놓을 집에 가는 것이다

   비록 내일 다시 버릴 그 집 이어라도

   하루를 살은 힘겨운 영혼의 쉼터

   꼭 오고야 말 캄캄한 밤을 따스히 보낼 쉼터

   하지만 그 집은 나의 것이 아니니

   나의 최종의 목적이 아니니

   내일이면 버려야 할 나의 집

   내일이면 다시 길을 나서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집을 찾아야 하리 더 높은 곳에

 

   더 높은 곳에!

 

 

가는 발걸음에 따라 산은 자리를 바꾸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가이코마가다케를 가운데 놓고 왼쪽에 센조가다케 오른쪽에 아이노다케가 웅장하게 서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내가 보지 못했던 시오미다케의 뒷면을 보여준다.

 

   산은 예전엔 바다였다는데 아직도 산호가 떡하니 산 위에 있는 것인가?

ㅎ 자세히 보니 이끼 인가보다 어쩜 그리 산호와 똑같이 생겼는지 

 

 

 

   고고우치히난고야! !

 

천상병님의 소풍에 나는 동감하지 못 했는데

내 힘겨운 삶이 어찌 가벼운 소풍놀이가 된 단 말인가?

하며 부인하였는데

진정 삶이란 소풍 이란 걸 오늘 깨달았네.

오늘 걸은 이 길은 소풍이었네

 

   산장에 물이 없다고 하더니 역시 물이 없을 것 같이 생겼다

산장은 고고우치다케 정상에서 조금 내려선, 비탈진 능선 바람 타는 곳에 서있는데

가까이 가 보니 두꺼운 에이치빔으로 뼈대를 세웠고 두꺼운 쇠줄로 잡아당겨 놓아서 바람에 최대한 견디게 해 놓았다

이런 곳에 산장을 지을 생각을 하고 이렇게 튼튼하게 지었다니!

이곳은 정말 알프스다 거칠 것 없는 산정의 들판은 운동장 보다 넓고

그 들판에는 오래된 소나무들이 누워 잔디밭을 이루고 널따란 운동장은 바닷가 모래사장처럼 드넓다

다만 모래가 아니라 얇은 잔돌들이다

산장은 영업을 안 한다 하니 들러볼 생각도 않고 마침 산장 바로 밑에 근사한 텐트사이드가 있어 그곳으로 가려하는데

? 길이 없다 아니 이런 멋진, 그나마 산정에 딱 한군데 있는 텐트사이드에 길이 없을까?

그나마 최대한으로 가기 쉬운 곳을 찾아보니 그래도 사람들이 몇 번은 드나들었는지

나뭇가지들 빾빾한 나뭇가지 사이로 사람이 드나들어 잘린 나뭇가지들이 있어 그리로 길을 내며 간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가운데 훤한 곳은 바람이 많이 탈 듯하다

에고 저기 한구석 푹신푹신한 이끼 위에 나의 집을 지어보자!’

 

   멋들어지게 집을 짓고 났는데도 오후1

오늘은 카레라이스를 파는 곳도 없으니 밥을 지어 먹어야 되겠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우선은 라면 하나 끓여 먹자 이왕이면 소풍 나가서 먹어 볼거나

 

   회색 잔돌들이 깔린 넓직한 알프스의 산정 중 가장 멋진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살림살이를 편다.

고고우치 산이 봉긋 솟았다가 천길 아래로 내려서고

건너편에 아라카와다케가 웅장하게 솟아 있는,

바라만 보아도 눈이 시린 가슴 벅찬 곳에서 먹는 라면의 맛은 천상의 맛이다.

나의 눈과 입이 천국에 가 있다

.....후르르 쩝쩝쩝......

 

   천국에 가 있는 나의 몸을 때리는 것이 있어 정신을 차려보니

소나무도 눕히어 잔디를 만들고, 돌들도 부수어 잔돌평전을 만드는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 바람과 함께 어느새 구름이 스윽스윽 몰려온다.

나라고 별 수 있나?  피난처에 가서 숨어야지!

정상아래 폭박혀, 유일한 작은 숲을 이루는 곳의 가운데 숨어있는 텐트로 들어가 눕는다

 

   낮잠 한 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구름들은 고고우치는 오르지 못하고 앞의 작은 봉우리만 넘실거리고 있다

그렇다면 슬슬 또 마실 나가 볼까?’

 

   오늘이 토요일 연휴 시작일 이라 그런가? 등산로에는 큰 배낭을 멘 등산객이 지나간다.

정상에 앉아 구름구경하고 노니라니 저 먼 서쪽 하늘이 뚫리는 가 싶더니 이내 다시 구름으로 덥히며 구름이 몰려온다

 

 

 

 

 

 

 

 

 

 

 

 

   해거름이 구름과 함께 몰려오는 정적의 시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집은

   바람 속에 서있는 나그네의 눈시울을 적신다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 가 있는 내 귀에

어디선가 소곤거리는 사람 소리가 난다

스물스물 몰려오는 구름사이로 여자와 남자의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정신을 불러와 어느 방향인가 귀를 쫑긋 세우게 하니

캄캄한 산장 쪽 이다

귀신? 하지만 이제 나는 믿지는 않는다. 죽은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의 눈에 보인다는 것은

그 세계는 이 세계와 같이 있다고 하여도 다른 공간 다른 질서 속에서 있으며 서로 관여하지 않으리라

다만 이 세계에서 원하는 사람만이 그 세계를 어떤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리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에너지는 있어도 그 에너지가 나를 범하지는 못하리라 믿는다

 

   소리 나는 산장 쪽으로 감각을 세우고 걸어가니

아니? 산장문은 열려 있고 그 앞에 두 남녀가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보더니 나에게 인사를 한다.

나도 인사를 하고 고고우치히난고야 클로우즈!?” 하고 의아한 얼굴로 물으니

일본말로 무어라 하는데 뭐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

오늘부터 연휴의 시작이라서 연휴기간 동안 만 산장 문을 열으려고 관리인이 왔는가?

알게뭐람!’

나는 인사를 남기고 나의 텐트로 돌아간다.

 

 

   에구구 에구구

저녁밥을 지어먹고 잠을 잤는데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반반한 곳이 없다

내 체중으로 어찌 눌러보면 되겠지 하고 눌러도 눌리지 않고,

하는 수 없이 몸을 S자로 틀어서 평평한 곳을 찾아 잠이 들었는데 역구리가 결리고 허리도 아프고,

설 잠을 자며 이리저리 굴려 편편한 곳을 찾아 보아도 영 마땅치가 않다

에이 하는 수 없이  이 별밤에 저 가운데 반반한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나?’

이사하기 싫어서 이리저리 개기다 가 시간 만 손해를 보고 드디어는 일어나 앉는다.

그 와중에도 왜 그리 잠은 안 깨는지, 비몽사몽으로 텐트 펙을 뽑고 텐트 안에 있는 물건들을 나르고

텐트는 쳐진 체로 들고 반반한 곳으로 옮기고 다시 펙을 박고 널어놓은 짐을 다시 텐트 안으로 다 옮기고

텐트 안으로 들어오니 각이 딱 잡히고 바닥이 반반하니

왠지 똑같은 넓이의 텐트 안이 더 넓어 보인다.

! 호텔이네~~

 

9월 20일

 

   시끌시끌한 학생들 떠드는 소리에 깨어난다.

간밤에 이사를 하느라 잠을 푹 못자서 잠은 아직도 머리통에 붙어 있는데

저위에 산정에 일단의 학생들이 왔는가? 신나게 떠들어 대고들 있다

 

   오늘 가야할 곳은 2시간 30분 거리의 다케야마히난고야.

지도상의 길은 완만한 능선 길로 보이니 크게 힘이 들지 않으리라 조금 늦장을 부려도 되겠지

커피한잔 끓여 먹고 학생들 소리 왁자지껄한 정상에 오니

역시 고등학생들 이거나 이제 막 대학 입학한 신입생들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정상에 배낭을 퍼질러 놓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마치 학교 운동장인양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놀고 있다

동쪽하늘에 구름장을 뚫고 올라오는 태양을 보며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나는 태양이 오르는 모습보다는 센조가다케와 가이코마가다케 머리 위에 놓인 구름들이 멋있어

학생들과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또다시 무거운 배낭을 지고 산길을 나선다

산길에선 이 무거운 배낭이 어루고 달래며 내가 힘겹지 않게 업고 가야할 마이베이비

야영지에선 행복 가득한 마이하우스이다

 

   깨끗한 아침볕에 앞산들은 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어찌 이리 하루하루 색깔이 다르고 나무가 다르고 하늘이 다를까

 

   이제 연휴가 맞는 가 보다! 그동안 나 혼자 독차지 하였던 남알프스가 시끌시끌하다

아침 햇살 아래 연록 빛 산길을 걷고 있는데 어젯밤 산장에서 보았던 두 남녀가 나를 추월해 간다.

그럼 산장지기가 아닌가?

그렇타면! 울산바위에서의 나처럼 무단침입자였나???

 

 

 

 

 

  

   ‘곤니찌와내가 먼저 인사를 하기도 하는데

상대방은 곤니찌와로 받고는 그냥가기도 하지만

가던 길 멈추고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하는데

에구 그럼 하는 수 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으면, 그제서야 일본인이 아닌 것을 알고 웃으며 자리를 비킨다.

   운해가 멋들어지게 능선을 넘는 것을 구경하고 있자니

긴 머리에 스타일 짱인 아가씨가 지도를 들고 내게 말을 걸어온다.

저런 아가씨와 산동무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스미마생하고 웃으니 그 산아가씨 멋쩍어 웃는다.

언어가 통한다면 혼자 산에 다니는 이 멋진 산아가씨와 대화를 하고 싶지만....

그 아가씨는 내려놓은 큰 배낭을 다시 메고 사요나라하고 지나간다.

사요나라~~’

 

 

   앞으로 누워가는 편안한 산길은 멋진 정원을 이루고

살아 있는 사스레 나무를 화분 삼은 인상적인 풍경도 보고

곰취 꽃이 피었을 적에는 장관이었을 산길도 지나고

 

   길은 그렇게 나즈막히 완만하게 콧노래 부르며 달리더니 작은 봉우리 하나 넘어서는데

! 가을이다!”

푸르른 잎사귀들 무성한 숲 속에 한 무더기 가을이 있다

 

가을은 구름 속에서 보이다 사라지고 보이다 사라지고를 여러 번 한다.

 

 

 

 

 

 

 

 

 

 

 

 

   이건 또 무슨 풍경인가?

산이 뚝 잘린 반 토막 봉우리에 고사목들이 서있다

남알프스에서 처음 보는 고사목 군락이다

그 군락아래는 산이 잘려나간 아픈 속살이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로 드러나 있다

구름이 그 아픈 자리를 보여주기 싫은 듯 구름 속에 감추는 듯하다

 

 

 

 

 

   연두색 활엽수의 여린 잎사귀와 상록수들의 진 녹 빛 숲!

그 속에 반짝이는 회색 고사목들이 참으로 조화롭다

 

   그런데 아라카라는 멀리서 보았을때는 녹색의 웅장한 산이었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여러 색채를 띠면서 정상부근의 붉은 계곡이 보인다.

더 가까이 다가가니 그 붉은 계곡으로 길이 오르고 있다.

우와! 내일 저 가파른 가을 계곡으로 아라카라를 오르는 거야?’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얼마나 붉길래 여기에서 저 먼 거리가 저리 붉게 보일까?

오늘 밤엔 잠은 다 잤네

 

 

 

 

 

   고도 2,400m 나무들이 살기 좋아 신이 나서 울창하게 쭉쭉 뻗은 원시림 울창한 산길에서

삼림욕 햇살욕을 하며 거니는데

등에 아가가 운다. 또 쉴 때가 되었구나.

산장이 다가가는 것 같으니 조금만 참자꾸나!’

구경할만한 거리도 없고 쉴만한 곳도 없어 달래가며 간다

 

   막 산길을 돌아 나가니 시야가 뻥 뚫리며 발아래는 곰취 밭이 있고,

그 아래 단촐한 빨간 집, 그리고 그 뒤로 푸르른 산!

어쩜 저리 영화 셑트장처럼 숲과 산과 잘 어울리게 산장을 지었을까?

곰취밭 가에로 돌아 산장으로 내려서니 산장 안에 왠 인기척이 있다

이상하다 이 산장도 831일 영업이 종료되었다고 안내되어 있던데

연휴라 영업을 하는것인가?’

어제 고고우치산장의 그 사람들처럼 무단 침입자들인가?’

들어 가 봐야 알일!’

 

   커다란 미닫이 문을 삐끄덕 열고 들어가 보니

산장의 매점같이 생긴 곳은 덧문으로 닫혀있고 나무로 된 평상위에 등산객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이 무슨 조화일까?

산장이 쉬는 기간 중에는 이렇게 평상을 개방해 놓는 것인가?’

그렇다고 혼자 결론을 내리고 그럼 나는 어디서 잘 것인가?’

밖에 나가보니 마당 앞에 화장실이 있고 화장실 옆으로 텐트사이드가 있는데 별로 마땅치 않타.

어제 잠을 설친 탓에 몸은 무거웁고!

그렇타면 오늘은 이 산장에서 일본 산장 경험을 해 볼까!’

산장 이쪽 끝에 배낭을 내려놓고 우선을 물빽과 세면도구를 찾아 들고 밖으로 나온다.

이곳은 숲 속에 있는 산장이라 분명 물이 가까운 곳에 있으리라

수장이라는 단어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멋들어진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물을 만난 나는 정신이 없다

신나게 씻고 물빽에 물을 담고 있자니 사람 소리가 난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네 ㅋ'

 

   시간은 구름들 몰려오는 오후 2

우선은 졸려서 산장 한켠에 자리를 펴고 눕는다.

시끌시끌 사람들 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여러 명의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에구 사람들이 이렇게 차면 코골이 소리에 잠을 잘 수나 있을까 ? 밖에서 텐트를 칠까?’

하고 밖에 나가보니 벌써 여러 동의 텐트들이 쳐져있다

어자피 오늘은 산장에서 자는 게 낫겠다

 

   산장 밖 탁자위에서 코펠에 물을 부어 육포와 북어 미역 마늘을 넣고 시원하게 육수를 만들어

신라면 반개와 누룽지를 넣고 바글바글 끓여서 저녁식사를 한다

후루룩 쩝쩝 맛나게 먹고 있자니 나이 지긋하게 생긴 남자들이 스미마세하고 옆 의자에 앉더니

배낭에서 왠 상자를 꺼내는데 그 안에서 와인 한병과 와인글라스2개가 나온다.

그리고는 안주류를 펼쳐 놓고 마치 도시의 바처럼 와인잔을 굴려가며 분위기를 낸다

내가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한잔 마시고 뒷동산에 마실 갔다 올 때 까지도

두 사람은 도시의 바에 앉아있는 손님들처럼 여유 있게 와인잔을 나누고 있다

나이 들어서 저런 여유도 괴안네!’

 

   해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캄캄해지기 시작하니 산장으로 한사람 두사람 들어 더니

렌턴을 켜고 짐을 끄르고 시끌시끌하다

그냥 눈감고 일찌감치 자려하였는데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가 깨진 시멘트 바닥을 찌그덕 찌그덕 거리고 움직이고

그나마 일찍 잠이 든 사람은 쿠우우울 쿠울 쿠우우울 쿠울 콧소리가 심하다

에구 어자피 결정한 일이니하며 그냥 침낭 속으로 머리를 쳐 박는다

잠시 잠이 들었을까 찌그덕 소리에 또 잠이 깨고

에구 안 되겠다 오늘도 잠을 설치면 내일 아라카와의 가을을 어찌 볼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판단을 하고 우선 텐트 보따리를 들고 나간다

밖은 별이 초롱초롱하다

이 캄캄한 밤에 텐트사이드를 찾아 나설 수는 없고 산장 앞마당 테이블 옆에 숙련된 솜씨로 텐트를 친다

구름이 없으니 후라이는 안치고 혹시 모르니까 펙 만 단단히 박아둔다

배낭 안에 들어가는 만큼 넣어 한짐 들고 나오고 또 들어가 잠자던 침낭과 메트리스와 나머지 짐을 가지고 나온다.

바닥이 반반하니 참 좋네!’

 

 

 

 

921

 

   아래쪽 텐트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4반이 다되어간다

에구 오늘은 일찍 서둘러 올라가려 하였었는데 늦잠을 잤네!’

렌턴을 켜고 일어나 불려놓은 누룽지로 아침밥상을 차린다.

이것이 마지막 누룽지다

이제 산장에서 라면만 사다가 라면만 먹고 사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도 일지만 크게 안달이 나지는 않는다.

마지막 불린 누룽지를 밥 인양 치즈에 맛있게 비벼서 먹고 휴지로 설거지를 막 마치니

산장에서 젊은 아가씨가 나오더니 웃으며 내게 인사를 한다

어제 본 안면이 있어서 나도 굳모닝인사를 하고 커피를 끓이는 데 이 아가씨는 빵을 꺼내서 먹는다

에구 한잔 더 끓여서 로키컵에 나누어주니 무척이나 고마워한다.

커피를 마시고 짐을 꾸리는데 이제는 식량이 동이 나서 배낭 싸는데 힘을 좀 덜써도 된다.

그래도 역시 배낭 밖에는 텐트 보따리와 작은 주머니 하나가 여전히 묶여 있다

 

   530분 이제 해가 떳는가? 날이 밝아 온다

오늘은 600미터를 올라가 3068m의 아라카라를 올라야 한다

아침 햇살의 아라카라를 보고 싶기에 쉬지 않고 열심히 오르기로 한다

길을 가다 보니 숲속의 멋진 곳에 제법 근사한 텐트사이드들이 있다

어제 조금 더 돌아보았더라면 밤에 이사를 안 하고 편히 잘 수 있었을 텐데...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렌턴 불빛이 뒤따라오기에 먼저가라 양보를 해주고 이어 간다

산한량 거북이인 산순이이지만, 오늘 새벽은 목적이 있으니 나름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아까 산장 앞의 아가씨도 배낭을 메고 오르고 있다

또 먼저가라 양보를 해주고 좁은 산길을 오른다

한시간여를 걸어도 또 한시간여를 걸어도 어제 산장 전망대에서 본 아라카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 거북이가 토끼가 되었는걸? ㅋㅋ

그나저나 이렇게 열심히 오르는데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아침 햇살에 비치는 아라카라 꼭대기의 단풍을 보고 싶은데

마음이 조금 조급해 진다 이제부터는 좀 열심히 쉬지 않고 가보아야겠다

나무들 울창한 산길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니 아직 해발 2700m도 못 넘었나보다

그런데 커다란 나무의 가지부분에서 뭔가 하얀게 보인다

다가가보니 노루궁뎅이?’ 설마 하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노루궁뎅이 버섯이다

지리산이라면 스틱을 길게 뻗어서 따 가지고 가겠지만 그냥 지나쳐 간다

그런데 조금 더 가니 또 노루궁뎅이가 보인다. 이번엔 아까 것 보다 조금 더 크고 스틱으로 충분히 딸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스틱을 뻗어 노루궁뎅이의 끝을 긁으니 하고 땅으로 떨어진다

와 실하네!’ 풀 묻은 것을 툭툭 털고 비닐봉지에 넣어 배낭에 잘 넣는다.

이제 나무는 점점 키를 낮추고 드디어 앞산이 눈에 들어온다.

쉬지 않고 열심히 올랐더니 땀이 나기에, 붉어지는 어깨 높이의 숲 속에서 한바탕 숨을 돌리고 조금 더 오르니

갑자기 훤해지는 풍경

 

! 가을신이다!

 

 

 

 

 

 

  마치 가을신이 가슴을 열고 두 팔을 펼친 듯한, 거대한 계곡이다

이 가을신의 가운데는 고속도로 보다 더 넓은 잔돌길이 신의 몸통이 되어 하늘로 향해 오르고 있고

그 양 옆에는 연녹과 황금 그리고 빨간, 무늬의 유가타(목욕가운처럼 생긴 일본평상복) 옷을 입고 펼친 신의 양팔이 있다

이 계곡은 한눈에 다 못 들어오고 고개를 반 바퀴 돌려야 할 만큼 어마어마한 계곡이다

마치 개미처럼 작은 등산객들이 신의 몸통을 오르고 있다

 

   잔돌위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이끼와 풀들

아니! 이것은 마치 사랑스런 요정들이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그래! 이것은 소나무의 요정, 풀의 요정, 이끼의 요정이다!

그 옆 돌멩이에 나란히 누워 요정들과 같이 숨을 쉬어 본다!

하늘이 그지없이 파랗다!

 

 

  

 

   역시 연휴라서 그런지 아님 이 아라카와다케가 이렇게 멋있어서 그런지, 등산객들이 꽤 많이 지나간다.

하지만 이 멋진 산 안에서 등산객들도 단풍의 일부, 아라카라산의 일부로 보인다

 

   길은 아라카와산의 가슴을 흐르는 너른 잔돌 너덜겅이로 오르게 되어있는데 무척이나 가파르다

한 시간이면 오를 이 길을 세 시간동안이나 놀며놀며 올랐나보다

 

   드디어 너덜겅이를 다 오르니 삐쭉한 바위능선 뒤로 또다시 나타난 산

마치 전설속의 동물의 모습처럼 웅장한 아케이시다케!

 

   나는 엄지공주가 되어 꼭데기 제일 멋진 곳에 앉아서 커피한잔 마시며

발 아래로 펼쳐진 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데

ㅋ 만화속의 인물이 등장한다

발에는 발목까지 오는 스페츠를 차고, 오우버트라우즈를 입고, 머리에는 헬멧을 썻는데,

그 헬멧에는 아직도 헤드렌턴 불빛이 켜져 있다.

야 정말 만화 캐릭터네! ’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은 마음을 꾸욱 참는다.

저 사람은 얼마나 힘들게 올랐을까? 바위가 떨어질까 무서워 헬멧을 차고,

이 훤한 대낮에도 아침에 켜고 올랐던 렌턴 불빛을 끄지도 못하고,

그 모든 두려움을 뚫고 올랐으니 대단하다 고 도 해야 할까?‘

이번엔 또 다른 시선으로 보아진다!

 

   이리저리 거닐며 나의 정원인양 멋진 봉우리 아래 이쁜 꽃들 찾아 이쁜 길 거닐며 놀다가 보니

꼭대기 기가 막힌 곳에 반반한 곳이 있다

딱 내 텐트 하나 자리이다. 하지만 야영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고 다만 돌밭으로 반반할 뿐이다

이러한 신천지 꼭대기에서 보름달 밤 하루를 보낸다면 그대로 선녀가 되어 하늘로 올라갈 것 같다

모험을 해 볼까 하다가 포기한다.

오늘밤은 보름도 아니건만 잘못하면 바람에 날려 그대로 선녀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2000미터 바람이라면 모를까 3000미터 바람을 경험한 나로서는 모험할 엄두가 안 난다.

더군다나 한번이라도 야영한 흔적이 없으니.......

 

    헤헤 역시 나이 들어 논다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네

연신 행동식을 먹어가며 올랐는데도 배가 고프다

하기사 이 가파른 산 600m를 올랐구나!

힘이 빠지니 약간 경사진 아라카와 前岳(3068m) 에서 中岳(3082m)으로 가는 길도 힘이 든다.

 

 

 

 

 

   아라카와히난고야!

중악 산꼭대기 바로 아래 산비탈 - 바람에 날려 갈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이곳산장은 한문 그대로 피난(避難)산장으로 보인다 다만 산꼭대기에 훤한 곳에 있을 뿐이다

어제 머물렀던 산장보다 더 작은 넓이의 산장 같다.

산장에 들어서니 그야말로 산장 안에도 피난처 같은 분위기가 난다

더군다나 때가 잔뜩 묻은 얇은 패딩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작은 키의 관리인은 네팔인과 똑 같이 생겨서

나는 잠시 여기가 히말라야 인 줄 알았다

역시 관리인 옷처럼 십여 평 정도 되어 보이는 산장 내부도 난장판이다

텐트를 친다고 하였더니 이곳엔 야영금지라고

하는 수 없이 오늘은 처음으로 비싼 값을 주고 산장에서 묵어야 겠네.

관리인이 내미는 용지에 인적사항과 등산 사항 등을 적어서 거금 10,000엔을 주면서 카레라이스도 같이 주문을 하였더니

숙박비 5,500엔과 카레라이스1,000엔을 제한 3,500엔을 거슬러 준다.

침상은 아마 2층에 있는 듯 좁다란 피난 사다리가 2층으로 놓여져있다.

배낭을 메고 2층으로 올라가려하니까 배낭은 1층에 내려놓고 슬리핑백만 들고 올라가라한다

배낭에서 슬리핑백을 꺼내 2층으로 오르니

10여 평의 바닥에 그나마 가운데에서만이 간신히 설 수 있는 나즈막한 다락방 같은 곳이다.

벌써 몇 개의 슬리핑백이 펴서 놓여 있고 또 몇 개의 담요도 펴져 있다

아마도 나보다 더 일찍 온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오른쪽 제일 끝으로 가려니 벌써 그곳엔 젊은 남녀가 있다

관리인은 그 남녀에게 내가 혼자 왔으니 맨 끝을 양보해 주라는 말을 하는 듯하다

두 남녀는 알았다고 이야기 하고 나에게 맨 끝을 양보해준다

삼각으로 된 지붕에서 좁다란 H빔이 내려서 칸들을 막고 있는데 그 칸 안 벽 쪽에 번호가 19, 20, 21로 메겨져 있는데

아마도 성수기 때에는 이 칸 안에서 세 사람이 자야하나 보다 둘이서 누워도 어깨가 달랑 말랑한 공간인데

하여간 나는 맨 끝 자리에 메트리스와 침낭을 펴 놓고 내려온다.

아래층에는 아마도 성수기 때는 사람도 자고, 비수기 때는 사람들이 식당이나 휴식처로 이용하는 것 같다

산장 안에는 여러 가지 인쇄물들이 붙어 있는데,

한문과 일어가 섞인 글자 중에서 한자들을 대충 해석하면 그래도 유용한 정보들이 있다

혹시나 유용한 정보가 있을 까 하고 살펴보는데, 손으로 적어놓은 일어와 한문이 섞인 한자들에는 눈에 번뜩 뜨이는 정보가 있다

하타나기댐에서 부터 사와라지마까지 이용하는 버스티켓을 소지한사람은 여기서 숙박비 3000엔을 할인해준다고?

서울에서 봐두었던 오아시스님의 블로그에는 사와라지마 산장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이 버스가 무료라고

그래서 본인들은 산장을 이용 안 하기에 3000엔 비싼 돈을 주고 버스를 탔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역시 이 산장을 이용해도 그 버스가 무료라는 이야기 인가?

확인을 하기 위해서 지도를 펴고 하타나기댐에서 사와라지마 버스 티켓 하고 숙박 영수증을 흔들어 보였더니

맞단다! 이 영수증이 사와라지마에서 하타나기댐까지 이용하는 버스의 무료티켓인 것이다

아이구 3000엔짜리 영수증이네 잘 보관해야지!’

 

   소중한 정보에 싱글벙글하고 있는데

관리인이 내 식사를 준비하는지 전자렌지에 햇반을 돌린다

그리고는 천이 둘러쳐진 내실로 들어가더니 쟁반에 3분카레와 숟가락을 들고 오더니 전자렌지에서 햇반을 꺼내

쟁반에 같이 올려서 나에게 준다. ‘크 히말라야 보다 더 하구만!’

이 산장엔 물이 없다고 적힌 정보를 설마로 무시하고 물도 조금만 가지고 왔는데 역시 물도 없게 생겼네!’

내 수통엔 물이 500리터 정도 밖에 남지 않았는데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나?’

뭐 그건 그렇고 이렇게 멋진 곳에 왔으니 어찌 자축을 하지 않을 수 있나?’

거금 800엔을 주고 캔맥주 큰 걸로 하나 주문한다. - 저번에 보니 작은 캔맥주는 기별도 안 가던걸

발아래에 세상을 내려놓고

구름보다 높이

하늘과 맞닿은 곳에 서서

바람을 맞는 가슴에 콸콸콸 들어가는

시원하고 짜릿한 시야시 잘 된 생맥주의 목 넘 김!

온몸의 핏줄로 쫙 퍼져서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새로운 존재가 된 듯, 신이 나서 날아갈 듯하다

 

 

 

 

   배도 부르고 기분도 만땡꼬 지만 좀 누워 쉬어야 할 것 같아 산장에 들어가 배낭을 끌르는데

! 핸드폰과, 카메라 충전기의 아답터가 안보인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삼부쿠도케고야에서 밧데리를 충전을 부탁하고, 110V 아답터 없이 충전기만 받았나 보다

아직 일주일은 더 산행을 해야 할 텐데 큰일이다!

에구구 인제 사진은 다 찍었구, 렌턴도 아껴서 써야 하네.......’

머리에 쥐가 나는 듯 안타깝고도 안타깝지만은 어찌 할 수 없는 일, 잠이라도 자서 잊어보자

그러구는 돌아서는데 휴게실 건너편 내실방에 어지럽게 늘어놓은 무전송신기들과 즐비하게 널려있는 전원코드들!

그래 이거야!’ 바닥에 고물상처럼 널려있는 전원코드들 중에 하나를 들어 나를 달라는 모션을 취하니

관리인은 갸우뚱하더니 내가 그 줄을 쓸모양이라 생각을 했는지 전선줄을 길게 잘라 준다

크 인제 되었다 충전기 끝에 있는 220볼트용 잭을 잘라내 이것과 연결해서 써봐야지!’

 

궁하면 통하는게야!

 

   낮잠한숨자고 유리창으로 밖을 보니 여전히 구름속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산장에는 사람들이 몰려 들어오는 모양으로 시끌시끌하다

벌써 건너편 침상도 모두차고 이제는 끝줄서 부터 두사람 사이에 한사람씩 사람들을 채운다.

에구 오늘밤 잠은 다 잤네 피곤한 몸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데 해가 지는 지 창 밖으로 벌건 기운이 인다.

일어나서 오리털 챙겨 입고 밖에 나가 보니 온통 붉다

간신히 바람 속에서 붉은 기운 한 장 찍고 들어오니 1층 휴게실에 사람들이 꽉 차서 식사를 하고 있다

휴게실 가운데 난로에는 오차가 팔팔 끓고.

몸이 으스스해서 있는 물 다 동원해 당귀차를 끓였는데 혼자 마시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난로가에서 손님과 이야기 하고 있는 네팔사람처럼 생긴 추리한 관리인에게 한잔 주니 너무나 고맙게 받는다

관리인은 너무나 귀한차를 마시듯 정성껏 마시더니 내게 난로위에서 끓고 있는 오차를 준다

고맙게 마시고 몸을 좀 녹이고 피난계단을 올라 이층으로 올라 내 자리에 가 눕는다.

그런데 건너편에는 벌써 한 칸에 세 사람씩 배정이 되어 있다

이제 우리 칸 차례인데 휴우 정말 천만다행히 이제 더 이상 숙박 객이 없나보다

정말 궁하면 통하게 마련인가 나갈 곳도 없는 오늘밤은 잠이 잘 오네.........

 

 

922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어 시계를 보니 세벽3시 작은 해드렌턴을 머리에 쓴 사람들이 침낭을 개고 있다

3,000m 정상에 지어진 2층 건물의 산장을, 바람은 밤새 무척이나 심하게 공격을 하였을텐데도

산장 안은 오리털하나 안 날리고, 바람소리도 작은 숨소리 마냥 작게 들린다.

밖은 별도 하나 안 보이는 캄캄한 새벽이다

내 옆에서 자던 커플도 일어나 조심스러운 손길로 침낭을 개고 있다

굳모닝 낮게 인사를 하니 낮게 굳모닝하고 미소와 함께 되돌아온다.

오늘은 이 신천지에서 하루 더 놀기로 하였으므로 나는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일단의 팀들이 떠났는지 산장 안은 다시 조용해진다.

지금 떠나면 한 시간 이상은 캄캄한 야간산행을 해야 할 텐데 다들 바쁜 일정에 쫒기는 사람들 이거나

조금이라도 더 남알프스를 걷고 싶은 사람들 인가보다

 

   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창밖은 구름 속에서 히뿌옇게 밝아 온다.

산장 안으로 눈을 돌려 보니 산장 안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났고,

내 맞은편에 한사람 그리고 내편으로 세 사람만 남아 있다

ㅎ 맞은 편 사람은 어젯 밤 코고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잠을 못자고 앉아서 한숨만 쉬더니 일어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도 참 높은 곳을 엔간히도 좋아하는가 보다 이 높은 산꼭대기의 다락같은 2층 방에서

코고는 소리에 방해도 안 받고 충분히 숙면을 취했네

시간은 530분 햇님이 일어날 시간이다

구름 속이지만 나도 일어나 밖에 나가보기로 한다

   그런데 내가 밖에 나오니 어느새 구름이 걷히더니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라카와 동봉옆으로 붉은 해가 솟는다

 

 

   그리고 나의 얼굴과 맞은 편 산들도 붉게 물들이고 있다

   햇살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이산 저산을 어루만지며 깨우는 듯하다

   너무나 맑은 투명한 햇살아래에서 나도 투명해지는 듯하다

이제 시오미는 제법 멀리 가 앉았고

시오미 머리 바로 옆에 조그마한 점으로 보이는 가이코마가 그리고

그 오른쪽의 아이노와 노토리 그 왼쪽의 센조가

그 웅장했던 모습들은

이제는 먼 과거가 되어 그 기억만이 가슴속에 가라앉아 있고

부두러운 산그리메가 되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손 흔들어 주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가슴으로 와 닿는다

 

 

 

 

 

   몸을 돌려 앞을 보니 어제 오를 때 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산

아라카라를 올라야만 보였던 산

아케이시가 나의 미래가 되어 나의 가슴을 흔들어 대고 있다

무엇이 있는지 상상하지 도 못한 채 힘겨웁게 가판른 산길을 올라 만났던

남알프스다!를 처음 보여준 기다다께의 위용

정상의 순간도 잠시 이제 남알프스로 뛰어 들으라는 기다다께의 소리와 함께 눈앞에 나타난 아이노

꿈길을 가 듯 산길을 올라 어머니의 품 같은 너른 아이노의 정상에서 눈앞에 나타난 시오미

비바람 속에 나를 만나고, 나와 함께 오른 시오미에서 나타난 아라카라

깍아지른 600미터 숲길과 자갈길을 올라 만난 가을 아라카라 꼭대기에서 나타난 아케이시

 

   저 아케이시는 또 어떻게 넘을 것이며

   저 아케이시를 넘으면 또다시 히지리가 나타나겠지!

 

   산 넘어 산이라는 이라는 인생도

   이 산행처럼 산 너머 떡하니 나타난 산을

   초연히 바라보며,  반드시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