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순이 일기

자연의 흐름속에서 죽음과 맞닥트린 날

산순이 2016. 2. 20. 20:31

입춘의 문이 열리자

느닷없이 들어오는 청춘의 봄바람

오랜 시간에 장사 없다더니  

힘 잃은 겨울바람이

미쳐 방비도 못 하고 훅 물려 가더니

엇그제는 다시 기운 얻어

눈가루 몰고 와 온 산에 뿌리고

기세등등하게 제자리를 빼앗았지만

이네 청춘의 봄바람에 쫒겨

한낮도 못 되어 눈은 다 녹아 버리고

또 한풀 꺽여 도망 가더니

어제 아침엔  냉이 다래 향기 가지고

봄바람 살랑살랑분다

ㅋ  그러나 아직 오기가 있는 겨울바람이

어디서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점심 먹고 봄 맞이 나가려던

나의 옷깃에 달려들어 찬바람 훅 불고 간다

그렇게 봄바람과 겨울바람이 힘겨루기 한창인

이월의 하루

빤히 승부가 나 있는 싸움에 관심이 없으니

모르는 체 하고 뒷마당 지나 숲 속을 올라본다

 

장화 신은 발 밑에서는 봄 기운이 얼은 땅을 뚫고 나오려는지

꿈틀꿈틀  용트림을 하고 있다

이 너른 숲   중에  왜  하필 이리로 가고 싶을 까?

길도 없는데  저쪽 능선을 오르고 싶어

푹신한 낙엽 밟으며  능선만 보고 오르는데

헉~~

눈앞에 누워있는 멧돼지 한마리

금방이라도 일어나 내달릴 듯 한데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아프거나  죽었거나......

하지만 마음 한켠에 이는

'만약에 멧돼지가 갑자기 일어나 달려들면 어떻하지'  하는 불안감을 누르며

한발한발 가까이 가는데

역시 눈섶하나  꿈쩍 안는다

자세히 눈을 들여다 보니

휑하니 페어있고  속 깊이 검다

하지만 내 심장은 쿵쾅거리고

금방이라도 멧돼지가 일어나 으르렁 거릴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상처 하나 없고  살도 퉁실해서 뱃부분이 두툼하며

누워 있는 자체가 참 편안해 보인다

뒷다리와 꼬리는 낙엽 속에 파 묻혀 있고

뾰쬭한 이빨은 오랜세월 사냥을 해 갈고 갈린듯 하지만 무시시하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나 바라보니 아무도 없지만  오싹하다

 

이 너른 산 중에 나는 왜 하필 이리로 왔을까?

 

갑자기 죽음을 본 나!

그래 죽음이란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겠지

그런데 그 때 그를 어떻게 맞아야 할까?

 

숱하게 산을 다니며 '죽어도 좋아' 하고 외쳤지만

히말라야의 번지점프대에서

한발짝도 앞서 나가지 못 하였던 나!

죽음을 삶의 도피처로만 보았던 나이다

그래도 한가지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은

내가 죽더라도  내가 남기고 책임져야할 가정과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 하나 다행이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건 죽음의 껍데기에 불과한것

갑자기 죽음이 닥쳐 온다면....

 

아! 그래 열심히 살아야 한다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나의것

사랑과 겸손과 용기와 지혜  이러한 것을 익히고

내것으로 열심히 만들어야

죽음이 와도 후회가 없을 듯 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걸 연마하고 노력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나의 숙제이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내 친구들도 한번쯤 생각해보기를 바랄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길

태양도 반바퀴 오늘을 살고 서쪽능선으로 지고

퉁실 살오른 달님이 오리나무 열매사이에서 얼굴을 내밀며

나를 격려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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