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의 문이 열리자
느닷없이 들어오는 청춘의 봄바람
오랜 시간에 장사 없다더니
힘 잃은 겨울바람이
미쳐 방비도 못 하고 훅 물려 가더니
엇그제는 다시 기운 얻어
눈가루 몰고 와 온 산에 뿌리고
기세등등하게 제자리를 빼앗았지만
이네 청춘의 봄바람에 쫒겨
한낮도 못 되어 눈은 다 녹아 버리고
또 한풀 꺽여 도망 가더니
어제 아침엔 냉이 다래 향기 가지고
봄바람 살랑살랑분다
ㅋ 그러나 아직 오기가 있는 겨울바람이
어디서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점심 먹고 봄 맞이 나가려던
나의 옷깃에 달려들어 찬바람 훅 불고 간다
그렇게 봄바람과 겨울바람이 힘겨루기 한창인
이월의 하루
빤히 승부가 나 있는 싸움에 관심이 없으니
모르는 체 하고 뒷마당 지나 숲 속을 올라본다
장화 신은 발 밑에서는 봄 기운이 얼은 땅을 뚫고 나오려는지
꿈틀꿈틀 용트림을 하고 있다
이 너른 숲 중에 왜 하필 이리로 가고 싶을 까?
길도 없는데 저쪽 능선을 오르고 싶어
푹신한 낙엽 밟으며 능선만 보고 오르는데
헉~~
눈앞에 누워있는 멧돼지 한마리
금방이라도 일어나 내달릴 듯 한데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아프거나 죽었거나......
하지만 마음 한켠에 이는
'만약에 멧돼지가 갑자기 일어나 달려들면 어떻하지' 하는 불안감을 누르며
한발한발 가까이 가는데
역시 눈섶하나 꿈쩍 안는다
자세히 눈을 들여다 보니
휑하니 페어있고 속 깊이 검다
하지만 내 심장은 쿵쾅거리고
금방이라도 멧돼지가 일어나 으르렁 거릴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상처 하나 없고 살도 퉁실해서 뱃부분이 두툼하며
누워 있는 자체가 참 편안해 보인다
뒷다리와 꼬리는 낙엽 속에 파 묻혀 있고
뾰쬭한 이빨은 오랜세월 사냥을 해 갈고 갈린듯 하지만 무시시하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나 바라보니 아무도 없지만 오싹하다
이 너른 산 중에 나는 왜 하필 이리로 왔을까?
갑자기 죽음을 본 나!
그래 죽음이란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겠지
그런데 그 때 그를 어떻게 맞아야 할까?
숱하게 산을 다니며 '죽어도 좋아' 하고 외쳤지만
히말라야의 번지점프대에서
한발짝도 앞서 나가지 못 하였던 나!
죽음을 삶의 도피처로만 보았던 나이다
그래도 한가지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은
내가 죽더라도 내가 남기고 책임져야할 가정과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 하나 다행이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건 죽음의 껍데기에 불과한것
갑자기 죽음이 닥쳐 온다면....
아! 그래 열심히 살아야 한다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나의것
사랑과 겸손과 용기와 지혜 이러한 것을 익히고
내것으로 열심히 만들어야
죽음이 와도 후회가 없을 듯 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걸 연마하고 노력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나의 숙제이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내 친구들도 한번쯤 생각해보기를 바랄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길
태양도 반바퀴 오늘을 살고 서쪽능선으로 지고
퉁실 살오른 달님이 오리나무 열매사이에서 얼굴을 내밀며
나를 격려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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