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순이 일기

장화신고 오른 와불산 ㅋ

산순이 2016. 2. 15. 00:07

 

산 사람 위주의 식단으로 죽은이의 상을 먼저 차리고

추모의 예를 다 갖춘 후,   접시 하나씩 들고 내려와

게다리 하나씩 뜯고, 새우껍데기 벗겨 한입가득 우겨넣고,

참치와 연어는 기름장에 찍어 김 싸서 입안에 녹이고, 발사믹식초소스 얹은 양상치로 입가심하고,

 잘 익은 두툼한 소고기스테이크를 씹어 고기 맛도 보고, 금매실주로 냄새를 없애고는,

눈으로만 잡채에 녹두전에 산나물들을 먹고

한 살 값인 떡국 몇 숟갈 뜨니 눈과 배가 모두 부르다

상을 치우고 이번에는 가족놀이 카드가 시작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밤늦게 까지 이어지던 놀이가 이제는 시간제한을 두고 두세 시간 만하고 끝을 낸다.

모두들 같이 나이를 먹는 탓이지...

 -이 놀이는  칠십도 넘으신 대왕마마이신 대장님의 누님이 좋아하시기에 가족모두 어울리지 않은 수 없는 게임이 되었다-

 

 

그렇게 쉽게 명절을 보내고 나니

갑자기 부르지도 않은 봄 손님이 오셨다.

입춘도 지났다지만 너무나 이른 행차이시다

그제 하루 종일 봄 손님은 떠나지 않고 온 산을 적셔 하얗던 산을 모두 씻어 발가벗기고,

어제는 종알대는 새소리에 눈을 떳다.

밥 먹고 집 안 밖 정리 좀 하고 나무 한짐 지고 오니 오전이 후딱 가버렸다

하릴없어 얼마 전 사귄 밤나무친구에게나 가 본다.

아무리 보아도 늠늠한 친구 이다

구름에 감싸인 모습을 보다 파란하늘을 인 모습이 보고 싶어 조금 기다리니 주문대로 구름이 가시고 파란하늘을 보여준다.

 

 

 

보고 싶은거 다 보고나니 이제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은 어제 내린 비로 산 위에 눈까지 다 쓸고 내려왔으니, 여름 장마 때 마냥 우렁찬 소리를 내고 있다

아래계곡으로 내려와 조금 걷다보니

올겨울 팔이 다쳐 겨울산 구경 한번 못한 발이  근질근질한지 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고 있다.  

집 뒤 능선에서 벽송사 능선을 만나 오르는 길은 너무 길어서

이 계곡 따라가다가 와불산 능선을 찾아 오르면, 한달음에 와불산을 오를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더니,

벌써부터 장화 신은 발이 밤나무 밑에 두고 온 방석과 커피보온병은 쳐다보지도 않고 산길을 찾아 오르고 있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편할 텐데 아무리 장화라지만 물이 불은 계곡을 오를 수 없을 것 같아

계곡 옆으로 적당히 몸 지나갈 만한 길들을 찾는데

다행히 짐승들이 다닌 흔적이 있어 계속 따라가다 보니 계곡 옆을 따라가던 짐승길이 능선으로 오른다.

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보니 이 이 능선을 따라 올라가도 와불산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어자피 와불산 지름길을 찾아보리라 마음먹었기에 다시 능선을 내려가 계곡 옆으로 계속 오른다.

산짐승이 낸 길 들이 간간이 있어서 따라가 보니 너덜지대가 나오고 길은 능선으로 오르고

그러면 너덜지대를 가로질러 또 계곡 옆을 따라 오르면 또 너덜지대가 나오더니

예전에 화전민들이 살았을 법한 넓직한 공터가 나온다.

잠시 그들의 숨결을 듣고 다시 계곡 옆을 따라 오르다 보니 앞에 작은 능선이 막아 그곳에 올라보니

아 이쯤이면 와불산과 가까운 능선인 것 같다

이제 계곡을 버리고 능선을 오른다.

능선을 오르려다보니 옆에 자그마한 짐승들 길이 있는데 이 길은 칠부 능선을 따라 오르고 있다.

나는 이제 짐승들 길이 아닌 사람의 길을 오를거야사람들은 지 잘났다고 꼭 능선 꼭데기로 다니거든

그런데 조금 오르다보니 작은 구릉 옆에 산죽들이 마구 잘라져 있고 한곳에 수북히 쌓아놓은 멧돼지의 집터가 보인다.

멧돼지가 있는 기척은 안보이니 소리 한번 울려서 큰 짐승이 있음을 알리고 지나간다.

조금 더 오르니 첫 번째 전망대가 나와 올라보니 건너편에 능선이 아직도 높다

아직 한참은 더 올라야 와불산에 닿을 것 같다.

잠깐 조망을 하고 다시 능선길을 오르는데 이번에는 산짐승이 땅을 파헤친 흔적들이 요란하다.

조금 더 오르니 이번에는 낙엽들이 움푹 파여 있는 곳을 지난다.

심장이 몇 번 쿵쿵 울리더니 금세 가라앉는다.

조금 더 오르니 와우! 머리 위에 몇십미터는 족히 되는 큰 바위가 떡 허니 가로막혀 있다

산 깊은 곳에  큰 바위들은 왠지 으스스하다

그 바위 옆에 겨우 몸 올릴 곳 만한 곳을 찾아 올록볼록 튀어나와 있는 혹들을 잡고 물이 뚝뚝 흐르는 바위를 오르는데

한줄기 땀이 흐른다.

그래도 바위를 오르면 그만한 높이를 쉽게 빨리 오르는 셈이다

헤헤 이제 고개가 바위 위를 올랐고 어깨가 다리가 올라왔다

와우! 이제 와불산을 9부정도 올랐나 보다 건너편 능선이 발아래 있다

방석이 없어 머리 위에 모자를 벗어 깔고 앉아 발아래 구름들을 내려다 본다

헤헤 장화신고 산을 오르다니....ㅎ ㅎ

쉬는 날이라고 아침도 적게 먹고 점심도 거르고 올라왔지만 배도 안고프고

마실 커피 한잔 없어도 목마르지가 않타!

침낭하나 들고 왔다면 이대로 잠자리가 되겠지만 빈손이라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항상 정상 바로 아래가 난코스이다

머리 조금 위로 하늘이 보이지만 가시에 몇 번 찔리고 흙길에 두어번 미끄러지고서야 와불산 능선에 오른다.

낮 익은 능선에 올라보니 지리산 상봉들은 검은 휘장에 가려져 있다

그리고 아직 와불산 까지도 몇 분을 더 올라야한다.

오후부터 비소식이 있더니만은 이내 비가 쏟아질 듯 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소나무쉼터까지라도 가 보아야지!

ㅎ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닌 다져진 등산길은 어찌나 걷기가 쉬운지

발이 그냥 날아가는 것 같다

날아서 소나무 쉼터에 다다르니

세월을 옮기고 세상을 옮기는 바람소리가 지리산 깊은 골을 울리고 있다

그 소리 속에 잠겨 있기도 잠시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두 방울 뜬다.

조금 더 머무르고 싶어도 빈손으로 오른 산이라 여기까지 온 것 만도 감사하고 내려서기로 한다.

 

 

어느길로 내려 설까?

아무래도 짧지만 힘겹게 올라왔던 그 길보다는

길지만 쉬운 길을 택하는게 나을 것 같아 산죽 사이로 길게 누워있는 길을 따른다

그런데 아무리 입춘이 지났기로서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저께 까지 하얗던 산의 눈들이 하루간의 봄비로 모두 녹아 버리다니,

그렇게 히안해 하며 걷는데 그만 흙길 안에 아직도 얼어있던 땅을 밟아 쭉 미끄러진다.

그렇지 눈만 녹았지 아직 땅은 얼어있네

조심히 조심히 내려오다가 몇 번을 미끄러질 뻔 했는데 그때마다

목 뒤가 뜨끔하고 빤짝하고 별이 비추다 근육이 죄어들고 땀방울이 비쳤다 그친다.

엊그제 친구의 통화목소리가 귀에서 들린다

축하해 오십이구먼

이제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할 오십이다 앞으로 산에 갈 때는 지팡이를 챙겨야지!

 

낮 익은 산길을 내려오는데 부슬부슬 비도 같이 내린다.

비는 내리고 아직 갈 길은 한 시간 남짓 남아있는데 조급해 보아야 나만 손해이다

한 시간의 비야 옷만 젖지 몸에서 내는 열로 몸은 젖지 않을거야

또 젖은들 어떠리 집에 닿아 뽀송보송한 옷으로 갈아입고 따스한 불 아래서 녹이면 되는걸

 

-산에서의 나는 이렇게 선택하여 결정한 것에 몸과맘 잘 따라주고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 백프로 수긍하고 받아들이는데

아니 인생길에서는 왜 그것이 안되는걸까?

-얼마전 새로 가본 길에서 우물쭈물하다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는 내 마음이 애궂다

에고고......-

 

길이 너무 쉬워 한시간도 못 되 집에 닿아

이왕 젖은 옷차림으로 밤나무 밑에 놓아두었던 짐보따리를 챙겨서 부엌에 들어가 거울을 보니

나는 아직 오십이 안 된 사십이다 ㅋ

 

그렇게 봄이 오나 했는데

오늘 또다시 바람이 새차게 불더니만 저녁 무렵부터 싸래기 눈이 내리기 시작해 누런 흙들을 또다시 하얗게 덮어 버린다.

에고고 내일 아침에는 또 내려가서 눈을 쓸어야 하나 보다

 

'이제 겨울과 봄의 전쟁이 시작되었나 보다

하지만 봄의 힘은 세어지고 겨울의 힘은 줄어들테니  승자는 뻔한 싸움인데

누구나 쉽게 제 자리를 내주기는 싫은 가 보다

그래도 세상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돌고 도는 것 인데

인간만이 어제를 붙잡고 움직이지 않으려하는 구나'

 

  내일 아침 앞마당은  이런 그림이 되겠지.....  .-몇일 전 눈 온 다음날 마당바위에서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