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정착한다는 것
많은 도시 사람들이 왠만치 살만 해 지면 전원에서 사는 삶을 꿈 꾸지만
거의 반백년을 익숙하게 살은 편안한 삶을 떠나서
척박한 세상에서 새 삶을 꾸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꿈으로만 간직하다가 죽고
또 몇몇 사람은 시골에 왔다갔다 몇 번하다가 포기하고
또 몇몇 돈과 의욕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가
일 년도 못 살고 별장으로 만들었다가 폐허를 만들고
그 중 참으로 극소수의 사람이 새로운 삶을 사는데
참으로 큰 고난을 겪고 이겨야만 가능한 일이다
-내 생각엔 변화란 죽음이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이란 없는 우리 대장님
십대에 서철을 띠고 힘과 머리로 학교를 평정하고
이십대에 별별놈 다 모이는 군대에서 본인이 별나다는 것을 인정하고 제대해
친구들 몇몇을 모아 하숙을 하며 친구들 월급을 모두 회비로 받아
경기도에 땅을 사서 농장을 시작했다가 망하고
또 다시 무일푼으로 봉재공장을 차려 잘 나가다가 또 망했지만
‘안 되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라는 지론으로 대장님 앞의 모든 불가능들을 가능으로 만들며 사시다가
‘이 세상에서 돈 버는 일만 안 되는구나’ 하시며
IMF 때 마지막으로 사업을 접고서
나라에서 돈 버는 일을 막으니 하는 수 없지 하시고 지리산에 들어 오셨다
처음 일 년은 얼음터서 노안까지 없어지며 신선놀음이었다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방문을 여는데 무슨 마음에서인지 방문을 열 수가 없었다구....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대로는 산에서 살 수 없겠다고 판단하시고는
1,200고지에 있는 영감절터로 올라 가기로 결정을 하시고
광점동에서 영감절터까지 8,90Kg되는 짐을 지고 십여차례 올라가
영감절터에 토굴을 파고
토굴 안에 보일러시설과 벽난로까지 몇 달에 걸쳐 설치하고
추운 겨울을 토굴에서 화두를 끌어안고 생활 하는데
몇 십일 만에
본인의 마음 깊은 곳 자신도 알지 못 하던 곳에 그린,
산 생활에 대한 그림이 참으로 컷으며,
거기에 얽매여 있었던 자신을 보고는
화두를 깨셨다고
그랬기에 토굴에서 내려 와서 혼자서 산 속에서 나무 가공만 일 년을 하고
집 짓는 일련의 일들을 혼자서 모두 해 나가시며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평정심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 우리를 이끌어 나가고 계신다.
은근과 끈기의 대명사 연아저씨는
이십대에 바위를 하다가 떨어져 한참을 걸어 내려오다가
뭔가 이상해서 아래를 보니까 발목이 돌아가 있었더라내
이때 주저앉으셔서 친구들의 부축을 받고 내려와
서울대병원서 장애진단까지 내려졌지만 장애자는 되기 싫다고 장애진단은 안 받고
핀 박아 녹은 다리를 끌고 이를 악 물고 뒷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악으로 발목을 다스려
다치고 일 년 후 지금까지 발목을 정상인처럼 사용하시는,
지리산집 짓는 동안에 모든 경비를 홀로 대신
연아저씨는
홀로 살아 보겠노라고
지리산집에 대한 권한을 모두 대장님께 맡기시고
송대를 모델로 양평에 땅을 사서
처음엔 텐트를 치고 무더운 여름 한 달 여를 우리대장님과 같이 기초 작업을 하고
그 뒤로도 혼서 서울집에서 양평을 왔다갔다 일 년여를 하며
터까지 다 닦아 놓았지만 막상 자리에 들려 보니 뜻대로 되질 않아 포기하고
다시 전국 이름 있는 산야를 또 일 년 여를 좋은 자리 찾으며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원점 근처인 벽소령 아래 음정에서
‘여기가 내 땅이야’하고 만세를 부르시며 당장에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몇 개월을 대장님과 둘이서 송대에서 출퇴근 하며
삐딱이 산을 축대를 쌓아 평탄작업을마치고 허가를 내려고 보니
법이 바뀌어서 신고를 하고 기초공사를 해야 한다고
...........
신고하기 전에 공사를 하면 원상복구를 하고 벌금도 내야 되어서
하는 수 없이 힘들여 돈 들여 원상복구를 하여 집을 지었으나
누군가가 원상복구의 불이행한 점을 고발하여 벌금을 물고
힘들여 돈 들여서 다시 공사를 하고 나서야
근 십년만인 작년에 음정에 번듯한 집을 지어 분가 하시고
산순이인 나도 백수가 되어 내려와 국립공원에 알바를 하였다가
계약직인 관계로 여름철 지나고 할 일이 없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노기상이 마산에서 음식점을 한다고 와서 도와달라는 바람에
마산에 내려가 일 년여를 일하며 쉬는 날 마다 송대마을을 왔다갔다하며
집짓기를 도와주다 들어와 내방을 짓고 눌러 살게 되었는데
2년여 흐르자 뭔지 모르는 마음속 불안감이 일면서
공동생활의 힘겨움이 느껴지는구나 싶을 즈음
노기상이
고덕동에 음식점을 차리는데 와서 도와 달라고 하여
지리산을 떠나 일 년여를 또 일하고 들어와서 송대에 살다가
또 2년여 시간이 지나자 또 단순하고 변화 없고 척박한 삶에 무료함과 권태로움이 느껴질 즈음
또다시 노기상이
미사리 커피숍 리모델링을 시작하였는데 와서 도와달라고 하여
몇 달을 내려가서 살다가 올라오고 나니 새로운 힘이 생겨
산 생활에 무난하게 적응을 하고 살게 되었으며
그러다가 정작에 힘들어 내려갈라 치니 아래에서 손 내밀어주는 사람 하나 없어
그냥 맘 다스리고 살다가
틈나면 지리산에 열흘, 보름
더 틈이 나면 먼 나라의 높은 산에서 한, 두달 바람 쐐고 오니
이제는 산에 사는데 맛이 아주 들어버려서
송대 귀신이 되어버렸다
대장님 말씀이
‘위기의 순간마다 노기상이 손 내밀어 구해주지 않았다면
보따리 싸고 도망치듯 내려가 아주 못 올라 왔을 텐데
너는 산에 살을 팔자긴 팔자인 모양이다 하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
대장님 마나님인 지산언니야 말로 제일 힘겨운 노력이 있었다.
언니는 대장님 먼저 산에 보내시고 도시에서 사시다가
가끔씩 왔다 갔다 하며 산 생활을 익혔는데
처음에는 며칠을 견디기 힘들어 하시더니
차츰 차츰 며칠이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세 달이 되고 육 개월로 느는데
장장 6년이란 긴 세월이 걸려서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아주 들어와 산사람이 되었다
이는
언니가 산에 있든 도시에 있든 온 관심을 기울여
언니 곁에서 최선을 다해 보살펴준 대장님의 정성과
언니의 참다운 삶을 살려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다
참으로 억제하기 힘든 공포와 불면의 밤들!
제어하기 힘든, 자기 스스로 돌아가는 머리를 새우기 위해
마당 한가득 장작을 패 놓는 도끼질로 한 달을 채우고
밤마다 찾아오는 알지 못하는 적들과 싸우기 위해
방 6개를 다 돌아다니며 편안한 잠자리를 찾다가
드디어 한밤중에 나타난 하얀 발을 물어뜯고 마당까지 내던지고
쫒아가서 패댕기를 치기까지 하며 자신과 싸우던,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추운 부엌에서
혼자 화선지에 매화그림을 그리고는 잠이 들었고
그 그림에 모두들 입이 벌어졌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림으로 산 생활을 적응하시고,
부엌일로 산일을 적응하시기 시작하여
몇 년 전에는 아주 들어와 서 살아도 문제가 없었으며,
이제는 자신의 삶을 바꾸어 보겠다고 일념으로 가는 길을 걷고 계시다
스무살 시절 지리산산장, 설악산산장을 내 집처럼 살았던
산에선 거칠 것 없던
이마에 산 자가 세기어진 나의 산 선배도
아이들 대학까지 다 졸업을 시키고 산에 들어가겠노라고 노래를 부르다
아이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아파트 한 채 팔아 지리산에 땅 살 돈만 받아
처음엔 음정에서 연아저씨와 같이 땅을 사서 대장님과 연아저씨한테 토목공사를 맡기고
본인은 도시서 집 짓는데 필요한 경비를 벌고 있었는데
일이 틀어져서 본인이 산 땅은 연아저씨한테 넘기고 또 기회만 보다가
두 번째로는 세동에 땅을 사서 이번엔 일 년여를 열심히 집까지 짓고는
집이 다 완성이 되어 갈 즈음
집안 마나님과 두딸의 불같은 반대로
또다시 본인이 산 땅을 대장님께 넘기고
지금은 지리산 근처에 얼씬도 못하고 있는데
어찌 될지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사는 터전을 바꾼다는 것은
삶을 바꾼다는 것은
그처럼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 인가보다
-내 생각에는 죽음을 격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이 된다-
지금 송대마을 마당바위는 또 한번의 태동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山생활을 하였지만
이제부터는 진정 나로 사는 生생활 -살아있는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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