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풍경으로의 여행

안개속의 백령도

산순이 2014. 4. 29. 10:34

 

지리산의 발치에서

봄이

슬렁슬렁

요동치고 있는

사월

 

내 마음도 사월이 되어

슬렁슬렁 꿈틀꿈틀

무언가가 요동을 치고 있다

 

 

바람으로 이야기하는

신의 망또와 같은 거대한 세계!

삶의 이전과  삶 이후의

비밀을 품고있는 듯 한

신비로운

- 바 다 -

 

그 바다가 살아 일렁이며 날 오라 손짓을 하는 듯 하다

 

 

    보름달의 바다

 

모태의 아기보 같은

무한한 삶을 품고

살아 일렁이는

- 바 다 -

 

그리고

그  한가운데

태아로 자리잡은

바다의 또 다른 모습인

- 섬 -

 

칠흑의 어둠속에서

두둥실 떠올라

바다와 하늘을 가르고

고독의 섬을 사랑으로  비추어 주는

- 보름의 달님 -

 

아! 보름날 섬에 선 느낌은 어떠할까?

 

 

아무런 준비 없이

슬리퍼 찍찍 끌고

바랑을 등에 메고

훌쩍 바람을 타는

타인의 삶을 흉내 내어

음력 삼월 보름날

백령도 두무진 바다 앞에 섯다

 

삼월 보름

둥그런 훤한 보름달을

토해 내는 바다를 보고 싶건만.....

 

삶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듯

처음 찾은 승봉도에서도

두번째 마음먹은 백령도에서도

바다는 내게 쉽사리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그리던

보름날의 섬은

아직 마음 속에만 존재 할 뿐

현실로 나타나진 않노라

 

 

먼길 떠난 나그네의 몸뚱아리가 천근만근이다

스물스물 밀려오는 안개에게 차라리 고맙다 고 말도 안되는 말을 하며

먼바다 끄트머리  백령도 두무진  낮선 민박집에

무거운 몸뚱아리를 눕힌다

바닥에 지글지글 불을 지피고

'내일도 달은 뜰거야' 치사한 위안을 하고

..............

 

 

그나마 섬으로 들여 보내준 것을 감사해야 하는가

섬에 든 다음날 아침에도 짙은 안개가 섬을 점령하고 있다

그나마 들어오는 날 알아두었던 버스편과

튼튼한 두 다리로

안개속의 섬을  휘젓지만

아는 것 하나 없고

아는 이 하나 없이

섬 을 휘젓던 몸과 마음은

추위와 피곤에 이내 만신창이가 되어 버려

안개속을 헤멘지 채 몇시간도 안되어서 작은 몸 뚱아리 하나 누일 곳만 찾고 있는데

회색안개 속에 먼듯 가까운듯 서있는 커다란 비닐하우스 한동이 성과 같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삐꼼히 큰 문을 흔들어 열어보니

'후~~ 끈 ' 무더운 공기가 얼른 몸을 들여보낸다

봄을 준비하는 너른 하우스 안에서 내 몸은 개구리 마냥 뻣어 버렸다

 

온갖것이 살아 움직이는 산을 등지고

넘실대는 바다에 숨어 있는 삶을 보겠다고

움직인 마음이 잘못인가?

산을 품어보았으니

바다도 품어보겠다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인가?

상념에 끌려 잠에서 깨어나니

커다란 빈 하우스 안 후끈한 현실 속

간간히 안개를 뚫고 지나가는 차소리에

'혹시 성주일까 ?'

맘이 졸여졌다가 펴졌다가 한다

하지만 이내 적응을 하고 편한마음으로 줄어든 마음을 눌러버린다

"에~~잇"

그러다 보니 마음은 어느새 배 밖으로 나와

'열엿세 아직 둥그런달을 이 하우스안에서 기다렸다가 만나볼까 보다'

하는 객기까지 나선다

ㅋ ㅋ

 

몸의 피곤이 물러나니

슬슬 배에 요깃거리를 채우고 싶고

눈에도 요깃거리를 채우고 싶어진다

ㅎㅎ

인간이고

삶인것을

 

 

백령도 자랑거리의 하나 몽돌몽동 '몽돌해안'

그 속에서 커다란 파전에

막걸리 대신 맥주한병 상에 올려 놓고

몽돌의 이야기와 주인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자니

잔과 접시는 이내 비워지고 배는 채워지고

이제 눈 요깃거리를 위해 따스한 가게문을 열고 나서 서

안개와 몽돌이 깔린 해안에 드러눕는다

......................

 

 

 

 

..................................

 

다행히 집에서 챙겨온 오리털파카와 오리털바지로 중무장하였으니

이대로 밤을 맞아도 되겠지만

나는 승려도 아니고 새도 아니니

안개보다 더 짙은 어둠이 찾아 오기 전에

안전한 잠자리를 찾아 일어나 또 다시 안개 속을 걷는다.

오전에 잠시 이동하였던 택시 안에서 익혀두었던 길을 다시 더듬어

사람사는 곳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간다.

한참을 가도 익혀두었던 풍경이 눈에 아니 들어오면

'이길이 맞긴 맞는거야?'

불안한 마음이 일지만 가던길 돌이켜 가기 싫고

한참을 가도 마을이 안 나오면 전화기 속의 택시기사님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는 생각이 닿으니

다시 편한마음으로 길을 맞는다  그렇게 또 가다보면 ' 저것 저 나무숲을 보았었지'

'아 저 모양의 빈논과 저 잡풀 우거진 두렁을 보았지'

'아!' 하고 다시 웃으며 걷는데

마치 이것도 맞춰보라는 듯이 나타나는 갈림길

'무조건 큰길이 맞을거야' 하고 고부라진 큰 길을 따라 가다보면

걸려있는 표지판들이 마을로 가는 길이 맞다 일러준다

간간히 불빛 나란히 앞세운 네발짜리 차들에 힐끔 힐끔 곁눈질을 해 보아봤자

저만치에서 미끄러져 세워주는 맘 좋은 차 하나 없다

불안과 위로속에서 사위워 가는 섬의 한복판을 걷노라니

스믈스믈 이는 상념

 

 '산길이나 섬길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고 내 방식대로 걷는 길인데

    좀 쉽고 결과가 금방 눈앞에 나타나는 길이고,

  인생길 역시 내가 선택한 길이고 내 방식대로 걷고 있는 길인데

    다만 아주 복잡하고 미묘하며,  결과는 생의 끄트머리에서 나타나는 길임을'

 '인생길은 신이 이미 짜 놓은 그물망보다도 더 세밀한 인연의 고리속에서

    태어나기 전에 정한 나의 봉우리를 향해 한발한발 길 찾아 나아가고 있는 것임을

  초반에는 내가 정한 봉우리를 찾는데 정열을 쏟아야하며

    중반에는 지금껏 오른 봉우리가 정녕 내가 정한 봉우리가 맞는지 다시 확인을 해야하며

    말년까지 꾸준히 오를 수 있도록 지나온 날을 정리하고 앞날을 보아야 함을'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봉우리 보다도 목적지 보다도

   그길을 가고 있는 나를 만나는 일"

 

읍내가 다다랐다는 증거로 큰 건물이 하나 곁을 지나고

언덕을  오르니 '파라다이스' 불빛이 깜박인다

이제 몸은 거진 파김치 상태이다

주인을 찾아 하룻밤 묵는 가격을 물으니

성수기엔 5만원이지만 4만원만 받는다기에

혼자 깨끗하게 쓸 것이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날계획이니 3만원에 묵자 청하니

일언지하에 거절이다

돈도 없는 처지지만 두번 청하기도 싫기에 그럼 안되겠네요 하고 뒤돌아

발품을 더 팔아보기로 한다

몇 발자욱도 못 가 이미 지친 몸은 다시 돌아가자 하지만 못된 고집장이 마음은 발길을 돌릴 맴이 없다

십여분 걸어 언덕을 내려오니 번화한 읍내이다

처음 맞은 모텔에서는 대문에 '죄송합니다 오늘 빈방이 없습니다' 란 푯말로 지친 나를 맞는다

'4만원에 자는 것도 황송할지 모르겠네...'

이제 할 말 이 없는 마음에,  발길은 다음에 보이는 숙소가 좋아보이건 말건 무조건 들어간다

방 값은 역시 4만원 에~~ 그래도 한번더 깍아 볼까 하고  금새 변한 마음에

'3만원에 하룻밤 묵으면 안될까요?' 하고 말이 벌써 나와버린다

'몽돌에서 걸어 오신분 맞죠?' 하고 묻더니만 내 용기가 가상해 보였는지 3만원에 쾌히 묵으라 한다

ㅎㅎ

썩 마음에 들지는 않은 방 이지만 따스한 물이 나온다기에 그걸로 만족을하고

열쇠를 받아 챙기고는 밖에 나가 깍은 만원으로 요깃거리와 맥주한깡 사들고 온다

쿨 쿨

바다내음 전혀 안나는 읍내 모텔에서 피곤한 몸은 골아 떨어진다

 

차로 십분거리

하지만 돈없고 시간만 많은 나그네는

뿌연 여명에 일어나

아직 잠자고 있는 모텔문을 여는데

밖은 어제와 똑 같은 풍경으로 안개가 여전히 섬을 점령하고 있다

'어제도 안개로 배가 뜨지 않았었는데 오늘까지 연이틀을 안개가 머물지는 않겠지!'

뿌연 여명의 안개속을 근거도 없는 희망을 안고 휘휘 저으며 부두로 향한다

 

근 한시간을 걸으니  갈매기 한마리가 기르륵 끼르륵 거리며 비릿한 바닷내음을 전한다

 

 어제 못 떠난 배표를 오늘 날짜로 바꾸는데 오늘도 역시 안개로 인해 8시 배가 9시까지 대기상태라 한다

같은 21세기를 살지만 21세기 문명의 혜택이 먼 곳들이 있다

관련기관에서는 이 안개상태가 이정도 바람, 이정도 기온에서는 몇시간 후쯤이면 사라질 것이라는 통계같은 것도 있을 법 한데 통계라든지 예상이라든지 하는 것은 전혀 없고 무조건 대기상태이다가 갑자기 안개가 사라지거나 기상상태가 좋아지면 배는 대기중인 손님들을 태우고 무조건 떠나버린단다

그러니 사람들은 멀리 갈 수도 없고 힘 없는 백성이되어 휴게소 하나없는 썰렁한 대합실에서 시간을 죽인다

하지만 나는 닫힌 공간 부적응증이 있으므로 오리털로 중무장하고

비릿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자리를 펴고 커피한잔 으로 바다와 마주한다

 

 

 

 

 

9시  대기

10시 대기

.......대기

.......대기

 

안개낀 바다에서 가마우지 한마리가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스물을 세도 서른을 세도 나오지 않더니만 저기 멀리서 까만 점으로 일어서

푸드득 날개짓하며 제모습으로 돌아오고

몇 안되는 갈매기들 서로 좋은 자리 차지하느라 긴날게 퍼드득거리며 싸우고 있고

물빠진 갯가에 조그만 구멍에서 고개 내밀던 쪼그만 게는

제집에서 몇발자욱도 못 나와서는 이내 갈매기 입속으로 영원히 들어가버린다

 

최종 한시까지 대기상태가 연장이 되었다가 배는 통제되어 부두에 묶여 버렸다

대합실을 메웠던 여행자들도 모두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지고

'다들 어디로 가는 것 일까?'

나의 일정은 이미 짜 놓은 상태

걸어서 한시간 걸리는  땅도 바다도 하늘도 회색의 세상 사곳에서 놀다가

 버스타고 두무진민박집으로 가야지

일정대로 가기로 하고 대합실을 나서서 걷고있는데

빵빵 울리며 지나가는 차안에서 배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의 아저씨가 인사를 하신다

아저씨는 너무나 친절하게 구경하지 못한 곳이 있느냐며

어자피 시간이 조금 있으니 차로 구경시켜주신겠다 하신다  

너무나 고마운 아저씨 덕에 팜플렛에서만 구경하였던 다 못 본 섬의 비경들을 보고서는

택시비는 커녕 버스비도 않들여서 두무진 민박집 까지 왔다

 

 

 

아저씨는 부인과 두 자녀가 캐나다에  있는 기러기 아빠로 지낸지 몇년째라고 

올해는 부인이 한국으로 들어온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안 들어올 것 같다고... 

왠지 가슴이 찡 한것은 무엇일까? 

가족이란 무엇이고 부모란 무엇일까? 

두무진 바위벼랑에서 차가운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맞아가면서도

알을 품고 있던 가마우지가 아저씨 가슴에 있는 것을 보았다........... 

 

 

 

 

 

이곳 민박집은 섬에 들어온 첫날 묵은 집인데 20평 남짓한 2층 가정집으로

일층은 주인노부부가 주거하시고 2층 전체를 민박을 내신다는데

혼자라서 쓸쓸하겠지만 지낼수 있으면 지내라기에 3만원 말도 않되는 가격으로 묵었었는데

20평남짓한 넓은 집에서 있노라니 마치 내집에 있는것 같아 얼마나 신이 났던지

부두와 멀어서 나갈때는 택시비 2만원을 지불해야하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또 이곳으로 왔다

그런데 세상에 어쩌다 이렇게 큰일이....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을 태운 배가 인천을 떠나서 제주로가다가 배가 뒤집혀서 구출중이라는...

아마 그래서 오늘 안개속에서 배를 더 안보내주었을 것이라는....

어..쩌..다..가

나 역시 배를 오래 타고 싶어서 인천에서 배타고 제주에 갈 생각을 했었었는데

아마도 이 백령도에 오지 않았었다면 그 배에 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 이었는데...

이 때만 하여도 배는 뒤집어진 체 바다에 떠 있었었고

구조는 시간문제이겠지  하였었는데.....

 

나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침을 대충 때운 상태에서 부두에서 커피만 연신 끓여먹다

통제되는 통에 점심도 거르다 맘 좋은 아저씨를 만나 구경하는 것만 신이나서 돌아다녔더니

배가 꼬르르 꼬르르  집에 도착한 사람마냥 날리가 아니다

'아버님  찬밥하고 김치 있으면 조금만 주세요'

두번째 만남이라고 넉살이 좀 붙었다

우리들의 아버님 세대는 손수 밥을 차려드실 수 없으신 세대

'아이구 배가 고프겠네 할망구가 이 앞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가서 데리고 올께 밥 주라고'

'어머나 무슨 말씀을 요 금방 들어오시겠지요 아직 배가 들 고파요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어요'

라고 이야기하고 '제 방으로 갈께요 문은 열려 있지요?'

하였더니 그렇다고 하신다

아! 내 집에 온 듯 하다 

조금후 어머니께서 오셔서 따뜻한 밥과 김치를 챙겨주셔서 배불리 먹고 한30분 눈을 감으니

몸은 훨훨 날아다닐 듯 하다

오늘은 두무진 바위벼랑에 앉아 지세울 수도 있겠는걸

기운이 펄펄나서 민박집을 나서는데

세상에나 내 기운에 안개가  슬슬 물러가고있는 것이 아닌가?  ㅋㅋ

나도 모르게 훌쩍 뛰어 산정에 오른다

 

 

 

안개가 아무리 끼어도,  육지로 내보내주지 않아도 전혀 상관치 않고 혼자 잘 놀고 있는 내게

백령도가 준 선물은 혼자 보기엔 너무나 아까운 황홀한 풍광..... 

여기가 어디여 그랜드캐년인가벼...

 

 

 

 

 

 

마치 투구쓴 장군들이 회의를 하는 듯한 모습이라는 두무진

장군이나, 선장이나, 한모임의 책임자나, 가장이나, 나를 지휘하는 나나

모두 그만한 지위에 맞는 인성과 훈련들이 필요하고

비상시 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되게끔 노력을하고

의식을 각성하고 살아야 할지라

안개속이지만 아주 선명하게 가슴을 찌르는 한 장수의 이야기에 고개가 숙연해 진다

 

 

 

 

 

이 가슴의 울림을 찾아 이 먼 곳 까지 왔구나!

쿵쿵 쾅쾅 쿵쿵쿵 쾅쾅쾅 쿵쾅 쿵쾅~~~

하지만 이제는 외부의 조건에 가슴이 울리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가슴을 울릴 수 있어야 할 나이가 가까와 지고 있건만

나는 아직 그 길의 입구 조차 찾지를 못 하고

과거의 습관만을 되풀이 하고 있구나!

......................

 

 

 

다음날 아침 안개속에 도착한 부두에서

또다시 오늘아침8시배표로 바꾸었지만

9시대기

.....대기

.....대기

대기 연속 속에서 갈매기와 놀다가 오늘도 못 떠나면

두무진 너른 집에 다시 가리라 마음 정하고 있었는데

 1시가 다 되어가자 술렁술렁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정박해 있는 큰 배로 사람들이 들어가기 시작을 한다

오늘도 못 떠나리라 생각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