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행의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아무곳에서나 잘 수 있다는점 입니다
사방이 눈이니 샘터가 필요 없고,
눈을 다지고 쌓아서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 수 있으니 굳이 반반한 바닥이 필요 없습니다
두리봉 정상의 바로 밑
바람도 없고 아늑하여 텐트사이드로 너무나 좋은데, 공교롭게도 가운데 나무뿌리가 있어
'저 뿌리만 없으면 기가막힌 자리인데' 하며 생각만하고 지나다녔었는데
눈이 쌓여 있는 지금은 아무 걱정 없습니다
다른 계절엔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통행금지시간
-해질무렵 전에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하산이 가능하니, 등산객들은 4,5시가 되면 한사람도 없지요-
까지 기다렸다가 텐트를 치지만
지금은 이 추운 겨울 평일날 저 눈밭을 헤치고 이곳을 오를 사람은 감히 없으리라 생각하고
이른시간이지만 작업을 시작합니다
눈제거용으로 가지고 온 프라스틱 쓰레받이로 눈을 대충 퍼 내고 발로 쓸어가며
왠만치 반반하게 만들어 놓고 오늘하루를 유할 집을 짓습니다
예전에는 코펠로 바닥이 나올때까지 눈을 퍼 냈었으나
지금은 그럴 힘도 없고 눈의양도 어마어마하여 엄두가 나지 않기에
대충 텐트 앉을 자리만 평평하게 만들어 놓고 텐트를 친 후에
들어가서 메트리스를 깔아놓고는 뒹굴뒹굴 구르며 바닥을 탄탄하게 만듭니다
나이 들 수록 힘이 없어지니 요령만 늘어납니다
이글루 처럼 아늑한 집이 완성이 되었습니다
'행복이 있다면 이런것이리라' 하며 혼자 미소짓습니다
집이 완성되었으니 이제 밥 지을 준비를 하여야지요
천주머니를들고 밖으로 나가 깨끗한 곳을 골라 눈을 퍼 담습니다
-올해는 한꺼번에 많은 눈이 내렸기 때문에 쌓여있는 눈이 무척이나 깨끗합니다-
텐트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코펠에 한솥 넣고 버너를 켭니다
눈은 이내 푹 꺼지고 한코펠의 눈은 한컵의 물이 됩니다
10분여의 시간에 한코펠의 물이 만들어 집니다
물은 깨끗해 보이지만 작은 먼지들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이왕이면 걸러서 먹어볼까?
욕심은 욕심을 부르는 법 이만해도 깨끗한데 깨끗한 물속에 찌꺼기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마시던 티백원두커피가 생각납니다
안에 있는 커피찌꺼기를 티스픈으로 글어내고 컵에 얹어놓고는 물을 부었더니
기똥차게 걸러집니다
2리터의 물을 만들어 물빽에 넣고는 문을 열어 밖을 보니
어디서 날아 왔을까? 구름들이 봉우리를 감싸 안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불건 구름이 몰려오건 상관이 없습니다
이곳은 봉우리에 있건만 봉우리에 감싸여 바람한점 들어오지 않습니다
먹을 물도 확보해 놓았고
'오늘 너무 수고 많았다....'
나에게 수고하였다고 따스한 한잔의 커피를 끓여주고 또다시 오리가 됩니다
오리털 버선에, 오리털바지에, 오리털자켓에, 오리털모자까지쓰고 오리털 침낭안에...
천사의 품 속 마냥 포근함 속에서 스르르 감겨졌던 눈꺼풀에 갑자기 환한 빛이 들어 옵니다
깜짝 놀라 작크를 열어 밖을 보니
아! 이것은 무슨 하늘의 작품이란 말인가??
두리봉을 감싸 안았던 구름들이 서서히 몰려 나가기 시작하더니
햇님의 빛살쑈가 펼쳐집니다
아! 그렇게 '시간을 멈춘 천상의 공연'
산정에 홀로선 나만을 위한 지리의 공연에 허공에 메였던 나의 눈은
어둑해 져서야 이세상으로 돌아오는 듯 합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망연자실해 있던 나를 깨웁니다
아! 이러한 것 일까?
내가 산에 가는 이유가!
이런 자연의 황홀한 경관을 직접 바라봄
그것은 무엇인가?
이 떨리는 가슴은 무엇인가?
화면으로 보는것이 아닌 살아있는 자연의 위대함을 바로 눈 앞에서 보는것!
그래서, 산에서도 해가 뜨고 지는 것이 보이는 봉우리를 택해서 잠을 자는 것인가?
저 멋진 풍경이 내 가슴에 새겨짐은 무엇인가?
그래서 내 삶이 어찌 변하였는가?
나는 어찌 살고 있는 것인가?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다
........
그져 내 좋아하는 경관을 보고 싶은 욕심일까?
그욕심은 채워질 길 없어 이 추운 겨울날에도 무거운 짐을 지고 산에 오르는가?
저 자연을 바라봄으로 나의 삶은 얼마큼 풍요로와지고 충만함을 얻었는가?
역시나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다
.......
먼 허공으로 날리우는 바람소리 두어점만 들릴뿐
어머니의 품속의 갓난아이가 베시시 웃으며 눈을 뜨는 것 처럼
포근한 잠자리에서 행복에 겨워 눈을 뜹니다
에어메트로도 겨울바닥한기는 스며들어와 이번에는 에어메트에 빨레판 메트리스까지 준비하였고
겨울용 침낭도 텐트안의 서리가 떨어져 축축해 지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에 고어텍스침낭카버까지
그리고 고산원정용으로 사용할 듯한 오리털자켓에 오리털 바지와 오리털 버선
여기에 텐트내피와 외피 폴 펙 끈 바닥천, 걸레용 수건, 눈삽용 프라스틱쓰레받이
그리고 동욱이한테 강탈한 5인용 압력밥솥에 작은코펠하나 후라이펜하나 씨에라컵2개 숟가락젓가락
작은 버너 2개 팻츠1개, 얇은 바람막이, 500미리 보온병과 500미리삼다수물병, 비닐물빽
가스3개와 12공기의 잡곡쌀
견과류를 넣고 볶은 멸치볶음, 김자반과 미역자반, 마늘쫑무침조금과 고추장조금
미역과 북어와 표고버섯, 그리고 새우가루, 고추가루, 깨소금, 소금
가시오가피차와 당귀차, 설탕, 코코아가루, 커피
잣죽2팩과 잣한봉지 건포도한봉지 마른오징어2마리 사탕 몇개
줄보고글과 아이젠, 카메라용 작은 핫팩3개
카메라와 헨드폰 그리고 밧데리들, 종이와 볼펜
헤드렌턴과 작은 걸이렌턴, 거버칼, 웽거가위, 손톱깍기, 거울, 집게
실바늘과 수선테이프 여벌라이타, 타이레놀과 마이신과 정로환, 지사제
세수비누, 치약, 칫솔, 로숀, 썬크림, 바세린, 손수건
면양말1, 모양말1, 속옷3, 털모자1
오우버트라우즈 한벌, 휴지 한롤, 여행용휴지 반팩
넓은 방바닥 에 퍼질러 놓으면 꽉찰 정도의 짐
다른사람들이라면 내 배낭의 2개라도 다 넣지 못할 정도로 많은 짐을
아침마다 꾹꾹눌러 짐꾸리기하는것은 과히 예술이라 표현을하여도 될른지....
'이것도 힘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일겨'
지 좋아 하는 것은 항상 사라질까 염려하는 것인지, 더 오래 간직하고싶은 욕심인지
나이먹어가면서 늘 하는 생각입니다
'언제까지나 이짓을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 짓을 할 수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텐트 걷기
텐트를 걷을 때 부터 가장 큰 고통이 시작됩니다
텐트 걷는것이 문제가 아니고 발가락 꽁꽁 얼리는 시려움이
어제 눈밭을 걸었던 가죽 비브람은 꽁꽁 얼어 있어서
36.5도의 체온으로 신발을 녹일때까지의 발 얼음이란,
어찌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그져 참아 내는 수 밖에
핫팩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생겼지만 이것은 카메라 몫입니다
나는 아직은 좀 참을 수 있지만 카메라는 아예 죽어버리는 놈 이니까요
텐트를 걷고도 30분 정도를 더 걸어야 발이 좀 녹기 시작합니다
햇님은 하루에 한번씩 지리산을 종주하는데
나는 오늘 어디까지 갈까? 얼마큼 갈까?
아!
'산더미 같은 눈'
저 속을 걸어 가야만 합니다
저 위를 걸어가면 너무나 좋겠지만....
눈은 스치로풀가루마냥 가벼워서 나의 몸과 배낭의 무게를 감당해 내지 못합니다
길을 벗어나더라도 눈이 적은 곳만을 골라 다니지만
사방이 나무가지들로 차 있어 어찌할 수 없이 통과해야 하는 곳
사람이 평지를 걸어다닐 때 다리를 얼마큼 높이 들고 걸을까요?
아마 문지방 만큼도 안 들을 겁니다
그런데 무거운 배낭을 맨채로 한다리로 서서 다른 한다리를 때어 무릎 높이로 들고 내딪는 다는 것은 여간 힘이 드는 일이 아닐진데
하물며 허벅지 높이로 올려 발걸음을 옮기는 일...
더군다나 눈이 다져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한다리로 서서 무게를 버팅기고 균형을 잡고는 다른다리를 들어 올려
다음 발을 땔 곳의 눈을 세번이상 다져 놓고는 발걸음을 옮겨야하는 눈위의 걸음
이것은 걸음이라기 보다는 지옥훈련이라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어쩐지 이번엔 지팡이를 가지고 오고 싶더라니'
어쩌다 다져놓은 곳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아
뒷다리를 때는 순간 몸이 허리까지 눈 속으로 푹 들어가 버리는 그 황당함이란
그리고 어쩌다 단단한 눈이 발바닥에 느꺼질 때의 그 로또가 맞은 기쁨
그러다 단단하다 느껴졌던 그 눈에 다시 푹 빠져 들어가면 그 허무함!
열 걸음을 때기도 전에 몸은 땀 범벅이되고 숨은 턱까지 차오릅니다
도저히 않되겠어서 무릎걸음으로 기어도 보지만 그래도 푹푹 빠져 버리고
허리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발버둥치다 소리까지 질러 버립니다
야!!!
악이 바친 소리가, 그래도 한쪽에선 웃고 있는 그 무엇이.....
또 도저히 않되겠기에 이번에는 배낭을 내려놓고 몇걸음 걸어가 러쎌을 해놓은 후
다시 돌아와 배낭을 메고 발자욱을 따라 가지만 짐을지었을 때와 안지었을 때가 틀린지라
또다시 푹 푹 눈속으로 빠지고
한번 빠진 다리를 다시 뺄려면 그 각도 그대로 빼야 하는데 그것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하봉을 오르는 일이 이리 힘든 일 일줄이야?
그 와중에 '길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야?'
괜한 불안감도 스물스물일고....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오늘은 영랑대도 못 가고 무덤가에서 쓰러져 잘지도 몰라'
무덤만 나오면 그래도 한숨 놓겠는데
아무리 가도 무덤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산후고통을 잊고 다시 아이를 배는 엄마처럼
오늘이 지나고 나면 이 고통은 잊혀지고 또다시 눈속을 걷고있을
이 멍청한 사람....
허기지면 아니되기에 중간중간에 보온병에 든 따스한 오가피차와 견과류를 열심히먹습니다
사십년이 훨씬 넘은 이 낡은 기계는 아직은 연료가 들어가면 힘이 납니다
그러나 이제 그마져도 약발이 않듣고
온몸에 진이 다빠졌다 생각되는 즈음
둥그스름하게 볼록한 눈무덤!
아! 여기까지는 어찌 왔는데 영랑대까지의 길은 어떻게 생겼을까?
예전의 길은 이 무덤앞을 지나 평지길로 영랑대 사거리까지 갔었는데
어느때 부터인가 깍아지른 절벽능선으로 새길이 생겨 이젠 묵혀진 예전길
예전길은 편하지만 사면에 있어 눈이 많이 쌓여 있을 것이고
새길은 바람부는 능선에 있기에 눈이 별로 없을거라는 생각에
'무덤까지만 가면 끝이야' 했던 생각은 저기 저 골짜기로 던져 버리고
한숨 돌리고 새 길로 오릅니다
몸 보다더 먼져 마음이 지치는 것일까?
마음이 몸을 컨트롤 하는 것일까?
목적지가 얼마 않남았다는 안도 감에 약간의 기운이 납니다
역시 능선상에는 눈이 굳어 있어서 좀전에 설영해 온 길 보다는 좀 수월합니다
바람의 흔적!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어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구름을 휘휘 몰아 능선을 넘게하는
그러나 정작 자신은 보이지 않는
바람!
그 바람이
하얀 눈 위에 흔적을 남겼네요....
분명 마음이 육체를 컨트롤 하는 것인가
한번의 짧은 쉬임 만으로 영랑대에 닿았습니다
아마도 이길이 모르는 길 이었다면 '어디까지 가야하나' 하고 지친 마음은 몸을 더욱 지치게 만들어
두세번은 쉬어야 당도하였을 길 이건만은....
얼마전 도솔선생님께서 영랑대박사이트를 잘 구축해 놓았다고 편히 이용하라 하시드만
시간은 그만큼 흘렀던가
경사지고 울퉁불퉁해진 자리를 다시 쓰레받이로 눈을 퍼내고 발로 다져 평평하게 만듭니다
이곳 역시 가운데 큰 돌이 박혀 있어서 겨우 1인이 잘 수 있지만 지금은 그돌멩이는 눈속에 파뭏혀 있어
다섯사람도 충분히 잘 수 있을 듯한 널직한 공간이되었습니다
힘든 후에 오는 이 휴식!
추위 후에 오는 이 따스함!
배고픔 뒤에 오는 이 맛있는 성찬!
박사이트를 구축하고, 텐트를 치고,
옷에묻은 눈을 털고 몸에묻은 피로도 털고 작은 나만의 집에 들어가
바닥에 메트리스를 펴고 침낭을 꺼내놓고 오리털 속에 들어갈때의 이 아늑하고 포근함,
작은버너를 켜서 하얀김에 향긋한향의 커피한잔 끓여 마실때의 이따스함,
별 반찬이 없어도 천상의 밥이라느껴지는 따스한 밥 한숱가락,
이것은 산행이 주는 큰 축복이고 큰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 아! 그런데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몸에 조금의 힘이 남아있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이야기구나'
이리 지치고 힘들고 나니 그것도 힘이 있을 때 이야기 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나는 고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있는 힘 이 있던 사람인가?
아님 산이주는 선물 이었나?
그런데 왜 고행도 아닌 일상의 삶 속에서는 힘듦을 행복으로 바꾸지 못하는가?
........
오늘 저녁은 특별히 갖은 해물(?)을 넣고 고추장찌게를 끓이기로 합니다
북어와 오징어 새우가루 그리고 미역조금 표고버섯조금
아 냄새가 기똥 찹니다!
아! 다시 살아나는 느낌, 얼굴이 펴지며 가슴충만한 그 무엇이 느껴집니다
여정이 긴 관계로 짐을 줄이느라고 김치도 안가져오고
물도 없고, 가스도 덜쓰기 위해 찌게도 없이
그져 7가지 잡곡밥에 마른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로 하였지만
혹시나 하여 가지고온 북어와 미역 표고버섯
역시나 아주 잘 가져왔다는 생각입니다
잡곡은 미리 씻어서 말려 왔기에 물 만부어 밥을 지으면 됩니다
밥도 압력밥솥에 이틀치를 지어서 이동할때는 비닐팩에 담아서 가지고 다니다가
먹을 때 후라이펜에 약불로 데펴서 먹습니다
가스하나가 빈 걸로 보니 한통의 가스로 3일을 섰나 봅니다
이제 갈수록 짐은 줄어들 것입니다
어서 줄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짐이 준다면 산에있는 시간도 얼마 안남는 다는 사실
빨간 고추장 찌게에 고추가루까지 넣어 칼큼한 국물에
따스한 밥 한숱가락 입속으로 마음속으로 들어 갑니다
밤새 바람은 어딜 저리 가는 것일까?
모두들 쉬는계절, 쉬는시간 바람만이 바쁩니다
어느새 밝아오는 기운에 눈을 떠서 침낭속에 누운채로 텐트문을 여니
바로 눈 앞에서 해가 떠오를 준비를 합니다
이리 바람 부는 날은 사진거리도 없겠지! 해도 덩그라니 지혼자 뜰 것 같고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일어나 앉아 커피한잔 끓여 마시니
주위를 빨갛게 물들이던 햇님은 덩그라니 빨간화장을하고 나타나십니다
둥실 두둥실 그러고는 아이고추워 하며 금새 새하얗게 얼어버립니다
아! 이맛!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만나는 이맛
이걸로 모든 고행이 씻어지는가?
텐트안에서 편히 앉아 만나는 붉은태양은 또 다른 환희 입니다
다른곳은 어떠할까 주섬주섬 오리털들을 주어 입고 밖으로 나서는데
휘엉청 한줄기 바람에 하마터면 쓰러질뻔 합니다
'아니 겨울만 되면 바람은 왜이리 기운이 세어진데?'
영랑대 바위벼랑으로는 가지도 못하겠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저멀리 운해가.....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바위벼랑으로 가보니 바람이 밤새 운해들을 퍼 날랐는지
두둥실 발아래 구름바다 입니다
어찌 한컷 찍고 싶지만 바람은 사진한장 못 찍게 방해를 합니다
서서히 반야봉에도 해가 들고
밤새 추웠을 지리능선에도 햇님이 따스한 볕을 내려주기 시작합니다
도저히 바람이 새어 영랑대에 서 있을 수가 없어서
조금 서있다가는 다시 뒤로 가서 바람 안부는 곳에 숨어 있고
또 다시 나가 조금 서 있다가는 다시 숨어있고를 여러번 반복하여야 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영랑대 그림자가 너무도 선명하여 기념사진 한장 찍어주고
우와! 이곳 텐트사이드만 빼 놓고는 사방이 온통 바람 속 입니다
이 바람에 남아날 것 하나 없을 것 만 같은데도 나무는 저 벼랑에서 어떻게 견디고 서 있는 것인지
나는 여우처럼 이렇게 폭 박혀 바람한점 없는곳에 숨었는데
사람이 나무보다 무엇이 낫단 말인가?
나무가 말을 못 할 뿐 이지 말을 한다면 사람처럼 춥다 덥다 아프다 흔들지 마라하며 시끄럽게
불평불만을 늘어트릴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내 앞에 보이는 모습은 그져 아무 말 없이 감내하는 모습일 뿐
모든 고행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안으로 안으로 갈무리하는 그 모습
내가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이자 본받고 싶은 삶입니다
그리고 왜 소나무, 구상나무, 가문비나무등 상록수들은 하필 저리 바람부는 바위벼랑에 많을까
바람부는 벼랑에서 묵묵히 바람을 맞고 보내주는 나무들 아래 서면 나는 너무 작아집니다
텐트에 햇님이 그려놓은 구상나무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어찌 저리 잘 그렸누'
'어찌 저리 자연이 하는 일은 모두가 자연스럽누'
'어찌 저리 자연이 내는 소린는 모두가 멋이 있누'
텐트 앞 잣나무에 자리를 틀고 앉은 저 새는 보선새 인가?
나무가지에 앉아 뜨는 해를 바라보며 자연의 소리를 듣는 모습이
내가 영랑대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또다시 짐싸기 의 고역을 끝 내고 하늘을 보니
어느새 달은 차 반달이 되어 훤히 웃으며 나를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중봉까지 가니? 이 느림보야!'
ㅎㅎ
'달님이 내 짐 좀 물어서 날라 주소 빨리 좀 가게'
'짐이 없어 날라간다고 해도 니가 중봉을 건너뛸까?'
ㅎㅎ
'그러게 나의 작은집 중봉에 오르면 이틀은 푹 쉴거야!'
이렇게 혼자 쉰 소리하며 바위벼랑을 내려왔는데
분명 이리로 가는 게 맞건만 10미터 앞의 바위봉우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기억에 의하면 밑으로 내려가 살짝 꺽어서 올라가는 데
이곳은 전혀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나무가지들은 사방에 널러져 있고
눈은 아귀처럼 산더미처럼 쌓여서 들어와바라 벼르고 있는 듯 합니다
아마도 가슴츰 까지 눈이 샇였나 봅니다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게 길을 터 주던 나무가지들이 눈의 무게를 못 이겨서 아무데나 척척 늘어져 있으니
발을 때면 수렁 속 일터니 가기가 겁이 납니다
가깟으로 묘기를 부려 나무가지들을 밟으며 몇걸음 가니 알듯말듯한 곳
사방을 둘러 보아도 이곳이 분명한듯 한데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으로 보이지 않으니
.....
10미터의 눈속의 사투
보이는 것을 믿지 않고 마음을 따라 얼마간의 전진을 하니
'맞아!' 눈에 익은 바위
능선상에 있는 바위길들은 그래도 바람이 눈을 다 슬어가 버려 오히려 걷기 편합니다
바위길을 지나 평평한분지를 지나는 데도 역시 눈사태!
아! 두리봉을 오를때 까지도 힘이 있었나 보다
어제의 설영-눈속의 수영- 후의 오늘의 사투
헬기장까지의 짧은 거리가 반나절이 걸릴까?
헬기장이 빨리 나타나기를 바라는 조바심은 이제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아! 헬기장
'오늘 나는 아마 이곳에서 자야 할거야'
헬기장이 눈에 들어오니 조금의 기운이 납니다
그런데
야! 살았다
1프로의 기대만이 있었는데 그 기대가 맞다니
누군가 치밭에서 올라와 중봉으로 올라간 발자욱이 있습니다
얼마나 앞서 갔을까
언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쉬어 갔을까
야영을 한 것 같지는 않지만 오래 쉬고간 흔적
비박을 한것일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하루전에 도솔님일행이 지나갔었더라구요-
혹시나 이곳까지 와서 비박을 하고 다시 치밭으로 내려 가지나 않았을까?
향운대서 당해 본 기억이 있어서 배낭을 내려놓고 중봉쪽으로 조금더 정찰을 가는데
ㅎㅎ 발자욱은 계속 중봉쪽으로 나 있습니다
영랑대서 헬기장까지 거진 세시간.....
한달음에 올라 갈 것 같더 중봉도 숨을고르며 헉헉 대며 오릅니다
인제 힘이 다 빠졌나 보다
연료를 연신 넣어가며 중봉을 오릅니다
다른계절이면 사람 흔적이 많건만
이 추운 계절 사람들은 길로만 반질반질하게 다니고 다른곳은 눈도 안 땟나 봅니다
길 외에 다른곳은 사람 자취가 없습니다
내가 중봉에 다닌이래로 최고로 사람 없는 때였지 않나 싶습니다
발자욱 하나 헬기장을 지나 찍사님들의 사이트까지 가서 눈속에 멋진 사이트 하나 구축해 놓았습니다
혹시나 하여 좀더 내려가 나의 사이트에 가 보았는데
반반했던 사이트는 눈속에 파뭏혀 흔적도 없습니다
오늘은 편하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곳에서 실례를 좀 해야겠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그런데 이곳 역시 도솔님 일행의 박사이트 였다구요
내가 영랑대서 고요히 누워 잘 때 이곳은 시끌 시끌 했겠습니다요-
내 어쩐지 영랑대의 저 기운찬 멋드러진 모습을 담고는
'아 도솔님께 선물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드만요
'참! 보이나요 저 왼쪽 뾰쬭한 영랑대서 가운데 움푹 들어간 헬기장까지
3시간 산행 신기록의 오늘의 사투의 현장 입니다'
햇님도 힘겨웁게 반야봉 너머로 들어가시고
나도 누군가 만들어놓은 멋진 사이트에서 평화로운 밤으로 들어가고....
쿨쿨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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