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사계

지리의 하얀 겨울 이야기 1 두리봉가는 길 - 시작

산순이 2013. 2. 2. 18:47

 

 

 

 자연의 일이란 실로 예측 할 수 없습니다

1980년대 그 언제부터인가 산에 공해선이 생겨서

이제는 '산 능선에서 해가 뜨는 것을 구경하기 힘드나 보다' 하였었고

산에 한참 다니던 1990년대의 어느해 인가는

지구 온난화로 겨울에 눈이 안 내려서 인제 '겨울에 눈구경하기 힘든가 보다' 하고 아쉬워 하였었는데

자연은 확률이나 예상을 뛰어 넘어선 곳에 있어서 

올해는 유난히 추워 앞산이 반짝짝하고  눈또한  많이 내렸네요

 

 

            

 

덕분에 땅이 일찍 얼어 우리의 한철 큰 농사인 칡캐는 일도 일찍 마무리를 하고 나니

이제 나의 부픈 계획 '겨울산에 실컷 있어보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지만 현실은 현실이라 

부산서 올라온 동태를 손질해서 빨래줄에 널어 말리고

갖은 창자는 창란젓을, 아가미는 아가미젓을,

내장은 오늘저녁 푸짐한 내장탕을 끓여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생태, 명태, 동태, 코다리, 황태, 북어 이름도 많고

머리부터 지느러미 껍데기그리고 온갖 내장까지

버릴것 하나 없는 명태의 삶은 어떠한 것일까?

인간에게는 유용한 그러나 정작 자신의 삶은 어떠한 것일까?

 

 

 

지구는 잘라먹던 달을   야금야금 내어 놓아   몇일 후면 보름이 됩니다

 

 

 

 

둥그런 하얀달빛이 하얀눈을 만나서

지리산의 온 능선들을 일으켜 앉혀놓고 밤을 지세워 이야기나누게 하는

겨울중봉의 섣달 보름!  정월 대보름!

 

얼마를 더 보아야 성에 찰런지 오늘 당장이라도 오르고 싶지만은

모처럼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과의 귀중한 시간도 빼앗길 수 없어 보름을 집에서 보냅니다

 

 

 개구리 배낭 메고 산악회를 쫒아다니던 친구 순금이의 등에 

본인 침낭과 오리털옷들을 챙겨 넣은 큰 배낭을 메우고 새봉을 오릅니다 

아무도 오르지 않은 산길엔 눈이 차지하고 있읍니다

 

 

 

 

 

우리집 뒷 능선의 최고봉인 새봉에 오르면 가슴이 확 트입니다

오늘은 혼자가 아닌 둘이서 지낼 집을 짓습니다

 

 

 

 

마냥 행복해 하는 순금이의 모습에 모든 피로는 다 달아나고

둘이 다니는 산행도 좋겠구나 생각을 합니다

 

지구는 다시 달님을 야금야금 잘라먹고

입까지 닦아버리고 마는 그믐이 지나고

나는 하나 둘 짐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ㅎㅎ

아마도 집에서 나서서 저기 바래봉까지 걸으려면 보름이 걸리지 않을까?

몇일간을 조금씩 야금야금 시간 날때 마다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방한켠에 쌓아 놓고는

밤마다 떨리는 밤을 보냅니다

드디어 1월 15일

새로만든 수제 가죽배낭을 가득채우고 텐트와 우모복, 메트리스를 배낭에 주렁주렁 메달아 집을 나섭니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배낭무게는 몇키로나 될까? 

하지만

등에 진 배낭의 무게는 마음의 무게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니 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게의 삼분의 이가 먹거리에 관련된 물건들이고

부피의 사분의 삼이 잠자는데 관련된 물건들이니

먹고 자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스럽습니다

 

향운대로 향하는 계곡의 마지막 샘터에 오늘의 자리를 틉니다

다른계절에는 점심때나 되어야 도착하는 곳이지만

어느해 부터인가 해짧고 눈많은 계절엔 이곳이 첫 종점이 되더군요  

이제 하루에 갈 수 있는 길이는 계속 짧아 지겠지요

그래도 언제까지 잘거리 먹거리 싸고 산에 오를 수 있을까??

 

이제 이계곡의 물을 먹고 나면 한동안 눈물을 먹어야 되겠지.....

 

산에 든 가슴은 이제야 진정이 되고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아 아무생각 없습니다

그져 이 눈 밭에서 먹고 자는 일만 있을 뿐입니다

무슨 큰 감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젊었을 때 부터 하던 습관으로 손과발이 알아서 텐트를 쳐 줍니다

젊음의 힘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때 했던 기억들은 나이들어도 살아남아 속도는 느리고 모양새도 못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것은  '젊음의 위대한 힘' 덕분입니다

 

나는 왜 혼자서 산에가는가?

나는 왜 혼자서의 산생활을 좋아하는가?

산의무엇이 좋아서 산 밑에 살면서도 산정에 오르는가?

어디 너 있고 싶은 데로 있어보렴!

있고 싶은 만큼 있어보렴!

무엇이 산을 오르게 하는지 보고 오렴!

이것이 이번 산행의 이유이고, 핑게 입니다

무엇을 보고 올지 무엇을 느끼고 올지???

 

바람이 먼 창공을 휩쓸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이곳은 바람 한점 없는 아늑한 요새 같습니다

오리털에 둘러쌓여 포근한 밤을 지냅니다

 

 

 

 

 

그리고 다시 맞는 아침

사방은 훤해져도 깊은 계곡엔 아직 볕에 들지 않습니다

저녁에 한 밥을 데펴 먹고 짐을 꾸립니다

 

발자욱 하나를 따라 계속 오릅니다

발자욱의 주인은 길을 따른것이 아니라 눈이 없는 곳을 골라 길을 내었네요

'거기가 아니라 여기야' 하고 길을 찾아 가면 여지없이 쑥 들어가는 다리를 꺼내느라 몇번을 고생을 하고

'잘난채 하면 않되겠다' 싶어 다시 발자취를 밟으며 따라 갑니다

아직 해는 머리위에 있는데 향운대에 닿았습니다

아직 기운도 있고 해도 남아 있지만 베이스캠프에 닿았으니 오늘은 여기서 쉬기로 합니다

 

나는 산을 가는것이 목적이 아니라, 산에 머무는 것이 목적인가봅니다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들은 스치로풀과 살림살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어두컴컴한 동굴속을

깨름칙하고 무서워라 할 것이지만은 '과거를 살고 있는 둔한 나는' 이곳이 포근한 안식처 입니다

 

바닥을 정리하고 짐도 정리하여 꺼내 놓고는 큰 기대 없이 샘터로 향합니다

샘터 앞에는 누군가 야영을 했던 자욱이 있고 -아마도 내 가 따라온 발자욱의 주인이겠지요-

이리 추운날에도 샘물은 얼지 않고 있네요

정성스레 한컵한컵 물을 퍼 담아 길어 동굴로 옵니다

동굴로 오는 길엔 이번여름 태풍으로 쓰러진 참나무가 가로막고 있지만 빈 몸이라 사뿐히 넘어 옵니다

 

동굴속은 텐트속의 아늑함과는 또다른 아늑함 입니다

조금더 집과 가까운 느낌이라 할까요!  하여간 조금더 튼튼한 요새입니다

커피한잔 끓여 먹으려 하는데 갑자기 오한이 느껴집니다

집에서 운동을 잘 못하였는지 고관절과 왼쪽어깨에 통증이 있어 치료를 받던 중 이었는데

아무래도 무거운짐에 눈길은 무리가 좀 따랐나 봅니다

얼른 오리털들을 꺼내 입고 침낭속에들어가 당귀차 한코펠 끓여 마시며 몸을 데피니 좀 괞찬아 집니다

 

포근한 너무나 포근한 밤을 지내고 또다시 찬밥을 데펴먹고 길을 나섭니다

 

 

저기 두리봉이 어서오라 손짓을 하는 듯 합니다

 

아니! 

그런데 샘터서 야영을 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야영을 하고 다시 하산을 한 모양입니다

길 모퉁이를 막 오르고 보니 발자욱은 화장실쪽으로 내려가 있고 두리봉 오르는 길엔 눈들만 소복합니다

 

'러쎌'?

이것은 러쎌이라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봄 여름 가을 산길엔

새 풀이 나건, 비바람이 불건 태풍이 불건, 나뭇잎들이 소복히 쌓이건

어렴풋한 산길이 간간이 이어져 보이지만

 

그리고 눈이 왠만큼 와도 길과 길아닌 곳의 높이 차이로 길을 구분할 수 있건만

사태라 표현될 만치 많이 온 눈산은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길엔 사람의 높이 만큼 지나갈 수 있게 나무가지들이 잘려져 있는데

이 가지들 역시 눈속에 갖혀 있으니 길은 완전히 눈속에 묻혀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두리봉 방향을 마음에 새겨 넣고 그곳을 향해 발을 땝니다

숲 속에 들어가면 두리봉은 사라져버릴테니까요!

 

눈속을 헤엄쳐 몇 발자욱 전진을 한 다음 주위를 둘러보면

이곳은 전혀 익숙치 않은 곳 입니다

예전에 산길을 다닐때 이나무저나무 이바위저바위를 일부로 눈에 새겨 길을 익히지 않고

마음으로 다녔었기에

기억에 나는 큰 나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한발 한발에 온 무의식과 온육감을 동원하여 주위를 세겨보며 갑니다

지금 이순간, 유치찬란하게 나를 들고 흔들던 온 마음이 사라지는 이순간!

오로지 길을 찾는 일 그 하나에 저 밑가슴에 웅크리고 숨어있는 무의식을 끌어올리는 이순간

'내가 살아 있는 순간이고 내가 산에드는 이유이고 내영혼이 지할일을 하는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가다보면 오래된 시그널이 나뭇가지에 메달려 웃고 있고 

부러진 나뭇가지들에 옛 눈길이 떠오르면

"맞게 잘 가구 있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고

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이번 여름 태풍으로 새로 부러져 스러진 나무들 때문에 길을 이어가기가 더욱 어려웠지만

마침내 능선에 올랐습니다

길보다는 조금 더 간 능선길 이었지만은 이제부터는 좀 수월합니다

 

 

            

 

ㅎㅎ

진짜로 30분 걸릴 길을 3시간에 걸쳐 올라 왔습니다

이런걸로 성취감이라 하면 많은사람들이 웃을까요?

안가도 될 것을 쓸데없이 이겨울 길도 없는 산길을 오르고는 느끼는

이 가슴 크게 열리고 그 가슴 가득 느껴지는 환한 감정을

 

주위를 돌아보니 파란하늘에 하얀 눈꽃들이 환히 웃으며 반겨줍니다

 

늦은 점심 간단한 요기를 하고 두리봉을 오릅니다

 

 

 

 

 

 

 

 

곳은 우리가 알고 있는 두리봉이 아닙니다

하얀 눈의 세상에 있는 두리봉입니다